이식을 받고 혈액 순환이 엄청<?> 좋아지면,
잃었던 감각이 돌아오기까지는 않더라도,
먹던 신경내과 약을 끊을 수는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다.
마침 담당 선생님께서도, 그 약은 치료제가 아니라
치료가 되는 것처럼 느끼게<착각하게>끔 하는 '가짜'이니까
복용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그래서 병원에 있는 동안, 그리고 퇴원해서 두어 주 동안은
약을 복용하지 않고 지냈었다. 한 번씩 찌르는 듯했지만...
많은 양의 면역억제제와 문제를 일으킬 것도 염려되고,
먹지 말라고 했는데 괜히 먹어서 탈이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싶기도 해서 끊고 지냈었는데,
도저히 다시 꺼내 복용하지 않을 수 없게끔 힘들었다.
낮에는 그래도 어지간히 견디겠는데,
잠자리에 들어 누우면, 왼편 새끼 발가락 주변에서,
전기로 지지는 듯한 저림과 통증이 생겼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그 정도가 날로 더해졌다.
사람을 미치게 할 만큼 가혹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면 '고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 복용하라고, 그나마 제일 가볍게
처방해 주었던 약을, 하루에 한 번씩만 복용하기 시작했다.
한 번 가면 두어 달치씩 약을 처방해 주었기 때문에,
이식 후 지금까지 거의 15,6개월이 되도록 약이 안 떨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 주쯤에 그 약이 떨어졌다.
약 없이 지내보려고 그냥 있었지만 며칠 넘기지 못했다.
예의 그 고문이 시작되었고, 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지난 주말에 병원을 찾았다.
그간의 일들<이식받은 것과 약을 복용해 온 것...>을 얘기했더니,
약을 조금 달리해서 주겠다며, 힘들 때마다 복용하라고 했다.
두어 시간 걸리던 힘든 검사를 새로 받자<왜냐하면 병원에
오지 않은지 오래됐고, 이식도 받고 해서>고 할까봐
좀은 걱정을 하고 갔었는데, 다행히 그런 소린 없었다.
일어서는 내게, 의사는, 몸이 많이 가벼워 보이고,
건강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신경 내과와 외과를 두 의사가 하는 그 병원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접수해 놓고서, 잠깐 다녀와도 되겠냐고
했더니, 그러라면서, 대신 반 시간 안에 돌아오라고 했다.
그 병원 가까이에 교회 집사님이 하시는 동서양 동시 진료소가 있었다.
거기 가서 아픈 팔목을 보이고 주사를 여기저기 맞으며,
신경내과에 오게 된 상황을 얘기했더니, 그 집사님도,
발이 아프면, 참기 힘들면 약을 먹어야지요...하셨다.
감각도 없는 발이 그렇게 느낄 정도면 얼마나 통증이 심할지,
나자신도 감이 잡히질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2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Y~에 가서, 늘 그렇듯이, 공부라기보다는 수다를 떨고 헤어졌다.
오는 길에 집에서 세 정거장 전에 내려 길 건너를 살폈다.
마치 종합 병원을 옮겨다 놓은 듯 온갖 진료과들이 큰 건물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늘 내가 필요한 과는 피부과였다.
두 개의 큰 건물에는, 내가 치료받았던 치과와 이비인후과가 있는데,
그 건물 안의 병원들은 시설도 잘 해놓았고 인테리어도 호화로웠다.
집 근처에 피부과가 하나 있기는 한데,
서울 강남에서 온 아무개 의사라고 병원 안팍으로 선전은 잔뜩
해놨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으로, 처방해 주는 약보다,
자기 피부과에서 만든 로션인가를 꼭 처방해 주며 비싸게 판다.
거기 가기 싫어서 일부러 몇 정가장 전에 내렸는데,
큰 건물 안의 피부과는 컴컴하게 불이 꺼져 있었다.
어젠 세미나 참석을 했고, 오늘과 내일은 휴진이라나!!
어쩔 수 없이 집 가까운 그 피부과에 가야 하나...싶어
터벅거리며 내려오는데, 큰 건물 옆 작고 오래된 건물에,
가정 의학과란 간판과 함께 온갖 진료과목들이 다 나열되어 있는
병원이라기 보다는 의원이 있었다.
크기와는 상관없이, 거기야말로 종합병원 수준이었다.
없는 게 없는 진료과목으로는~~
그 병원을 Y~에 가며 스치듯 잠깐 보긴 했지만,
전문 피부과가 아니라 가정의학과라고 해서 피했었다.
그렇지만 곧 시작될 점심 시간과, 다음으로 미룰 처지가 아니어서,
그 작고 낡은 건물 2층으로 기웃거리며 올라가 봤다.
통증의학과라고 적혀 있었는데, 아무래도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그 병원과 마주한 문에는, 미래 예측 상담... 어쩌구 하는,
한 마디로 뻔한 그런 곳이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다시 내려가 살펴봤지만, 입구는 거기 뿐이었다.
병원 문을 밀고 들어가 여기 피부과도 보냐고 했더니,
수더분하게 생긴 간호사가 짧고도 간결하게, "네!" 했다.
꼭 어느 외딴 시골에 있는 병원<물론 가본 적은 없다 ㅎㅎ>같았다.
두 세 사람 앉으면 꽉 찰 것 같은 작은 소파 하나와
좁은 대기실, 양쪽으로 나 있는 작은 문<그나마 하나는 커튼으로
쳐져 있는...> 두 개가 전부였다.
온 적이 있냐고 해서, 처음이라고 했더니,
이름과 주민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으라며 포스트잇을
통째로 건네 주었다.
혈압과 당뇨는 없으시죠? 하길래, 다 있는데요? 했더니,
안으로 들어가 혈압계를 들고나와 혈압을 쟀다.
상당히 높은데요? 하길래, 열심히 걸어와서 그런가 보다...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금방 이름이 불리워졌다.
안으로 들어가 의사를 보는 순간, 나는 그대로 무장해제를 했다.
한 눈에도 넉넉해 보이는 인품과 풍채의 여의사에게 급호감이 생겼다.
뒷목의 부스름같은 것을 보여주자, 뭔지 알겠다는 듯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많이 드시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신경써서
챙겨 드시라는 말과 함께, 심하지는 않으니까, 처방해 드리는 연고를
바르면 금방 좋아질 거라고 했다.
먹는 약도 아니고 발라도 아무 해가 없는 거니까 안심해도 된다면서...
1분도 채 안되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일어서 나오다가,
간호사한테, 아픈 손목에 대해 얘기하며,
제통도 하시는 거 맞죠?했더니, 맞다며,
것도 선생님께 보시죠...해서, 다시 의사와 마주했다.
당뇨가 오래다보니, 여기저기 탈이 많이 난 것을 민망해하는 내게,
여의사는, 약대신 다른 방법으로 해봅시다...며 치료실로 가자 했다.
치료실이라고 불리는 그곳엔,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고,
환자가 없는 작은 병원인 줄 알았던 곳에,
침대마다 사람들이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바깥에 장애우들을 위한 방문 치료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진료에 대해 잔뜩 적어놨던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옛날의 혜민소같은 병원이 아닐까 싶었다.
어린 여자 아이와 젊은 여인, 할머니...같은 이들이 누워 있었다.
비어 있는 한 침대에 앉으라고 해서 앉았더니,
의사가 좀 불쾌하고 힘들 수는 있지만 약물을 쓰지 않으니까
몸에는 아무 해가 없음을 주지시켰다.
굽어지는 긴 바늘같은 것으로, 아픈 팔목 윗부분을, 세 군데 정도
찔러서 움직였다. 근육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손목이 아파서라기보다는, 근육이 굳거나 뭉쳐서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바늘로 움직여주면 훨씬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찔리는 거야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몸이 아니던가.
그 정도로 불쾌하거나 힘들어 할 수는 없었다.
가만히 참고 있는 내게, 의사가, 뜬금없이 "참 고우시다..."고
해서, "네? 아, 네..." 하며 할 말을 찾지 못했더니,
의사는 말없이 웃었다.
남자 의사가 그랬더라면, 이건 또 뭔 소리~ 했을텐데,
내 또래의 여의사가 그러니, 나도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긴 오늘 내가 평소보다 좀 고운 붉은빛 립스틱을 바르긴 했지...하면서. ㅎㅎ
피부가 낫든 낫지 않든 닷새 후에 다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왔을 때, 팔에 한 번 더 주사 시술을 해보자고 했다.
흔쾌히 그러마 하고, 고마움을 다시 한 번 더 전하며 병원을 나섰다.
가급적이면 약물을 쓰지 않으려는 배려와 편안하게 대해주는
그 의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바로 옆에 자랑하듯 서있는 크고 좋은 건물들에 비해,
병원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작고 초라한 곳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그 여의사가 초면인데도 왜그리 푸근하게 느껴졌는지 참...
웬지 다음에 갈 때, 근처에 파는 붕어빵이라도 한 봉지 사들고
가야할 것 같은 그런 친근감이 막 생기는 거였다.
오늘 큰 건물의 피부과가 휴진인 게 얼마나 다행이든지~~^^
피부가 다 나은 후에, 아픈 손과 팔목 때문에라도,
그 병원에 자주 찾아갈 것 같은, 아니 가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의사 한 명에 간호사가 대여섯명씩 있는 인근 병원에 비해
달랑 의사와 간호사뿐인 그 의원이 벌써부터 난 정이간다.
집 앞 골목에서, 오랫만에 야쿠르트 아줌마의 리어커가 서있는 걸
발견하고, 근처 배달을 간 아줌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있어도 오지 않아 그냥 가려는데 저만치서 바쁜 걸음으로
오는 아줌마의 모습이 보였다. 기다리고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평소에도 그렇게 리어커 끌며 다니는 아줌마를 보면 일부러라도
비피더스 몇 개쯤 사주고 싶은 마음에 그냥 지나치지 않는데,
오늘은 영양가 있는 것도 챙겨먹으라는 소릴 들었으니 꼭 사야지...했다.
요새 내가 하는 외출의 대부분이 병원 순례지만,
수술하고 입원하는 심각한 게 아니라 나름 즐기면서 다닌다.
그마저도 아니면 갈 데가 없고,
오라는 데는 더더군다나 없으니까. ㅋㅋ
새로운 장소, 새로운 얼굴 대하는 거 내켜하지 않는 나인데,
오늘처럼 그렇게라도 새로운 곳으로 가보게 하시는 것이
나를 향한 그분 뜻이 아닌가 싶다.
사람도 그렇지만, 장소도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고,
그 속에 어떤 사람을,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지 알면 새롭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난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한 운좋은 날이다 싶다. 감사하다...
웬지 이 2월을, 겨울을 잘 보내는 것 같다.
그리고 내일부터 시작 될 3월과 봄도 어느 때보다 잘 맞을 것 같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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