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 교회의 남은 자들
(김성수 목사)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고 주위를 둘러 봐도 전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없어 보일 때 ‘이제 기독교는 세상에게 완전히 참패를 당해서 지리멸렬해 버렸구나.’ 할 때도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들은 여기저기에서 구원을 받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남은 자’ 교회라는 것이지요. 권세라는 말 ‘엑수시아’라는 말은 ‘엑스’‘ 무엇 무엇으로부터’라는 말과 ‘우시아’‘본질’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 안에 있는, 인격과 삶, 내 본질로부터 나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인데 그 힘은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상대방이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잘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권세’라고 합니다.)
(계 2:24-29) “24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인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25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 26 이기는 사람, 곧 내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27 그는 쇠막대기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고, 민족들은 마치 질그릇이 부수어지듯 할 것이다. 28 이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다스리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샛별을 주겠다. 29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지난 시간까지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책망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엉터리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칭찬과 격려를 듬뿍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두아디라에 남아있는 자’‘남은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만이 진짜 인 것입니다. 그들만이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나은 자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은 자’라고 하는 단어를 보시면 어떤 뉘앙스가 느껴집니까? ‘많은 무리 중의 소수’라는 느낌이 드시지요? 성경은 구약서부터 계속해서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을 ‘남은 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고 그 중의 남은 자 몇이 바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 안에도 남은 자와 그렇지 않은 대다수가 갈라져 있다는 것을 주의 깊게 보셔야 합니다. 굳이 성경이 그 사람들을 남아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두아디라 교회의 대다수가 가짜였다는 말입니다. 24절부터는 주님께서 바로 그 남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타락을 하고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전부 하나님과 등을 돌리고 다른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부 멸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 어떤 자들을 계속해서 남겨 가시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셋을 남기시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 유기 시켜 버리시고 노아를 남기시고 나머지는 다 쓸어 버리십니다. 셈을 남기시고, 아브라함을 남기시고 이삭을 남기시고 야곱을 남기십니다. 이렇게 아주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남겨 가십니다. 그들 전체를 가리켜‘영적 이스라엘’‘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별 없이 창세 이후로 우주의 종말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건져내어지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며 할례를 행하는 자기들만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행위들이 자기들을 의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를 비롯한 그의 서신에서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이스라엘처럼 행위로 의인이 되려 하는 자들은 오히려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을 박살을 내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을 설명하는 모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논리를 들은 유대인들이 ‘그러면 우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다 버리시는 것이냐?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하고 반응을 할 것에 이렇게 자문자답해 줍니다.
(롬 11:1-5)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 구절은 왕상 19:14이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지요?
(왕상 19:14-18) “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 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혈통이나 육정으로 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유대인, 헬라인 그런 구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만 열심히 건져내고 계신 것입니다. 구약에 왜 이방 사람들이 계속해서 구원을 받는 모습을 기록해 놓으셨는지 아세요? 이방사람 욥이, 모압 여자 룻이, 가나안 여자 라합이, 아람 장군 나아만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모습을 왜 기록해 놓으셨겠습니까? 그리고 왜 아브라함의 후손들 중 대부분이 유기 되어 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 주십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태어나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하고 주위를 둘러 봐도 전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없어 보일 때 ‘이제 기독교는 세상에게 완전히 참패를 당해서 지리멸렬해 버렸구나.’ 할 때도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자들은 여기저기에서 구원을 받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남은 자’ 교회라는 것이지요. 바울은 로마서 11장 서두에서 이스라엘은 바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 또한 그 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아직도 유대인의 천년왕국을 기다립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는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가 덤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이제 곧 유대인들만을 위한 천년 왕국이 온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지금은 유대인들이 전혀 구원을 못 받습니까? 지금은 오로지 유대인들을 제외한 덤으로 구원받는 교회만을 위한 교회 시대입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아니라,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씨다. 베냐민 지파다. 내가 구원받았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지요.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들의 잘 못된 믿음으로 다 버려지는 것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회개 했습니다. 다 누굽니까? 유대인입니다.
(행 2:38-41)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1:20) “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예루살렘 교회에 바울이 갔을 때 야고보와 장로들이 바울에게 한 말입니다. 그 때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 수 만 명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대인들 중에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나요?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덤으로 구원을 받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나중에 천년왕국에 들어갈 유대인입니까? 이스라엘, 남은 자는 ‘교회’입니다. 이 남은 자 사상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Key입니다.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계속해서 그 남은 자 사상을 우리에게 계시하십니다. 이사야의 아들의 이름을 ‘스알 야숩’이라고 이름을 짓게 하십니다. (작년에 임마누엘을 설명해 드리면서 스알야숩과 마헬살랄 하스바스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었으니 참조하세요) 그 뜻은 ‘남은 자만 돌아오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내내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피력하십니다.
(사 10:20-21)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롬 9:27-29)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남은 자만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그 남은 자들의 자격이 뭡니까? 어떤 자들만 남기십니까? 자격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만 남기십니다.
(롬 11:5)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 하느니라”
(엡 2:8-9)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야곱이 에서보다 착하고 잘나서 남기신 것 아닙니다. 다윗이 사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서 남기신 것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께 택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존경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무가치하고 무자격한 자들입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니콜라스 1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군의 젊은 장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장교였습니다. 그는 부대의 재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도박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크게 도박을 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간에 걸쳐 조금 씩 조금 씩 부대 공금을 잃은 게 나중에는 도저히 채워 놓을 수 없는 금액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에 감사가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젊은 장교는 자기가 그동안 잃은 돈의 액수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천문학 적인 돈이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 돈은 다시 채워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청년 장교는 모두가 잠이 들면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밤 12시가 되면 자기 막사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로 하고 그 시간이 될 때까지 그는 종이에 이런 저런 자기의 심경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 엄청난 빛,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나의 죽음으로밖에 갚을 수가 없다, 누가 갚을 수 있는가?’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는 가끔 일반 사병의 군복을 입고 사병들의 막사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에 니콜라스 1세는 마침 그 청년 장교의 부대를 방문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 유독 불이 켜져 있는 한 막사를 발견했습니다. 니콜라스 1세는 살그머니 그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권총을 들고 잠들어 있는 청년 장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낙서를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이 엄청난 빛,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나의 죽음으로밖에 갚을 수가 없다,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니콜라스 1세는 그 젊은 청년 장교가 자살을 하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청년 장교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 장교가 써 놓은 그 글 아래에다가 ‘나, 니콜라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인을 하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 청년 장교는 아침이 되서야 잠이 깼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종이에 이상한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이 빛을 갚을 수 있는가?’라는 글 아래에 ‘나 니콜라스’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군 기밀문서를 다룰 때 보았던 황제의 사인이 거기에 적힌 것을 보았습니다. 청년 장교는 생각했습니다. ‘어제 밤 황제가 오셔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아셨구나, 그런데 그 황제께서는 나를 벌하시는 대신에 자기가 그 빚을 대신 갚겠다고 하신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황제의 궁정에서 돈 가방을 실은 마차가 그 막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대의 감사에 부족액을 정확하게 채워 놓고 갔습니다. 이제 그가 갚아야 할 것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은 죄 지은 것밖에 없는데 황제는 아무 조건 없이 그의 재산을 들여 그를 살려 준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니콜라스 황제는 러시아 정교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 청년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입은 남은 자들이 두아디라 교회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계 2:24)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유일하게 그들만이 그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유일하게 사단의 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전 2:10)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남은 자들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계시된 순전한 진리가 아닌 엉터리 가르침들 즉, 사단의 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알지 못한’‘우크 에그노산’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빠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정말 자기가 바르게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그 분들은 남은 자들은 아닙니다. 남은 자들은 절대‘우크 에그노산’ 엉터리 가르침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내가 다른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짐이라는 것이 뭡니까?
(마 23:3-5)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 술을 크게 하고”
(행 15:10)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짐을)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서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다른 행위를 거기에 보태려하는 것은 저주받을 짓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나는 다른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다른 아무 것도 우리가 보탤 게 없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그 감사가 여러분의 행실을 바꾸어 가야 합니다. 이제 짐과 의무와 부담이 아닌 기쁨과 감사의 거룩한 행위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 것을 짐으로 여기고 있는 분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세요. 그리고 주님은 계속해서 25절에,
(계 2:25)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너희에게 있는 것이 뭡니까? 19절에서 공부했지요? 그들이 받은 복음,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생긴, 그들이 칭찬 받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굳게 잡으라는 것은 가만히 서서 자기 방어나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진보와 발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 백성이 된 남은 자들아, 너희에게 이미 주어진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점점 자라가게 하라는 말입니다. 자꾸 노력해서 발전시켜라가 아니라, 이미 완성품으로 주어진 너희의 것을 점점 밝히 확인하고 깨닫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올 때까지, 매일 매일 오늘 주님이 오신다는 마음으로 굳게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쓴 요한 서신에도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요일 3:2-3)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것이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러한 자,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에게 있는 것을 굳게 지키는 는 자를 26절에서 이기는 자,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계 2:26)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그렇게 이기는 자에게 무엇을 주시겠다고 하십니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받은 자는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디서 본 구절이지요?
(시 2:7-9)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시편입니다. 그러니까 남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님 안에서 그 분과 연합되어 구원받은 자들이니까요. 그리고 그 분과 공동 상속자가 된 자들이니까요.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다고 하는데 그 권세가 어떤 권세일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아니, 여러분이 남은 자들이라면 지금 그 권세를 누리고 계셔야 하고 발휘하고 계셔야 합니다. 정말 여러분이 그 권세를 발휘하고 계신가요? 그 권세는 어떤 권세입니까?
우리가 ‘권세’하면 다른 사람을 압제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우리에게 주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그런 권세가 아닙니다. 권세라는 말 ‘엑수시아’라는 말은 ‘엑스’‘ 무엇 무엇으로부터’라는 말과 ‘우시아’‘본질’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 안에 있는, 인격과 삶, 내 본질로부터 나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인데 그 힘은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상대방이 공동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잘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권세’라고 합니다. 이런 권세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절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권세입니다.
권세를 부리고 싶은 사람들이 이 권세가 없으니까 그 권세를 흉내를 냅니다. 총과 칼과 무력으로 그 권세를 흉내 냅니다. 공산주의, 군사독재, 조폭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권세를 흉내 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외모나 힘은 사람을 변화시켜 진심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만들 수 없는 권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세상 적인 권세를 가진 자들을 수없이 세우시고 저물게 하시고 하시면서 진짜 권세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으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진짜 권세가 어떤 권세인지 빌립보서를 가서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빌 2:5-10)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그 예수님의 권세가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권세는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권세인 것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켜 나에게 굴복시키는 권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서부터 생기는 권세인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면서도 권세가 없는 줄 아세요? 왜 상대방이 여러분에게 항복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권세가 발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남은 자들에게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계 2:28)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그 새벽 별이 뭡니까? 발람의 예언에 그 힌트가 나옵니다.
(민 24:16-17)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는데 그 메시아를 별이라고 묘사를 합니다.
(계 22:16)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남은 자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 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셨고 여러분은 그 분과 함께 이 광야의 삶을 통과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이 광야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더위와 추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만나와 생수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되셔서 여러분을 도우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께 와 계신 것입니다. 외롭다고 생각될 때 너무 힘이 든다고 생각 될 때 절망과 좌절의 구렁에서 이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 되실 때 정신을 바짝 차리시고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세요. 그리고 그 분을 의지하세요. 그리고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순종과 섬김과 사랑과 인내와 겸손의 권세로 세상을 굴복시켜 나가십시오. 세상이 여러분에게 굴복하지 않거든 더욱더 하나님께 매달리세요. 그리고 그 분께 여러분을 항복시키세요. 그 길만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굳게 또 굳게 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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