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해 있는 사랑방에,
여러 자매들이 있지만,
성격도 취향도 믿음에 대한 열의도...
유달리 나와 잘 맞는 친구가 있다.
의성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시부모님께서,
친구 남편이, 맏아들이라고 무릴 하셔서,
넓은 2층 양옥집을 십여년 전에 사주셨었다.
집은 그럴 듯하게 갖고 있었지만,
택시 운전을 하던 남편의 일이 언젠가부터 힘들어지고,
세 딸아이들은 점점 자라나면서 집만 있는,
요즘 말로 하우스 푸어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검소하고 알뜰한 친구는, 동네 통장 일도 맡아서
열심히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내가 그 친구네 근처에 살 때는,
한 몇 해 동안, 구제 옷가게를 하기도 했다.
그 몇 해 동안, 며칠에 한 번씩 바람을 쐬러
그 친구네 가게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딸아이들이 오면, 떡볶이랑 만두같은 간식을 사서
같이 먹기도 했었다.
그때 우린 서로가 심적으로 영적으로 너무 많이 닮았음을 알고
부쩍 많이 친해졌었다.
친구가 가게를 맡아 하고 있었을 때,
두어 번 친구의 친정 엄마를 뵙고 인사를 드리면서
얘기도 잠깐씩 나누고 그랬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바쁘게 살던 친구가 어느 여름 갑자기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었다. 남편이 하던 택시를 처분하고,
중형 버스를 사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그 낡은 택시를 다시
일반 승용차로 바꾸게 되었고, 그 차로 운전을 시작했었다.
시작은, 자주 친정을 다니려니, 버스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힘들어서...라는 이유였는데, 왜 그때 친구로 하여금
운전을 배우게 하셨는지, 우린 머잖아 알게 되었다.
내가 투석 기간 중반을 넘어셜 무렵에, 친구의 엄마는 간경화
판정을 받고, 1년 반에서 길어도 2년이라는 선고를 받으셨다.
그 동안에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었다.
안타깝게도, 친구네 가족 모두 간이 좋지를 못했다.
누구도 그 엄마한테 간을 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친구는, 아직 미성년인 제 큰 딸아이의 간이라도
이식해 드릴 생각까지 했었다.
그때부터 친구는, 엄마를 차에 모시고 다니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기도원으로,
은사 받은 누군가의 안수 기도를 받으러, 부흥집회로...
엄마의 간경화 판정 이후, 교회에서든 집, 혹은 거리에서든,
친구를 만날 때면, 친구 엄마보다 친구가 더 염려스러웠다.
늘 목이 쉬어 있고, 피곤에 지친 얼굴이며, 기운 딸려하는
모습들이... 안타까움에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제발, 네 건강부터 좀 챙기거라. 이러다 쓰러지면 누가
엄마를 돌보고, 너는 누가 돌보냐...고 걱정을 하면,
친구는 그저 미소만 힘겹게 지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시어머니마저, 백내장, 녹내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눈마저 안 보인다고 해서
모시고 다니며 병원 진료를 받고, 입원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다 얼마전엔 그 시어머님이 갑상선암 진단까지...ㅜㅜ
친정 엄마, 시어머니... 두 어머니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
쫓아다니느라 딸이자 며느리인 친구만 여위어 가고 있었다.
이 쪽엔 맏딸, 저 쪽엔 맏며느리... 그 여린 어깨의 짐이
너무도 중했다.
그래도 친구가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희생을 해서인지,
친정 엄마도 잘 버텨주셨고, 시어머님도 견뎌 주시는 듯하여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입을 모았었다.
친구는 정말 최선을 다했었고, 그 이상으로 넘치게 했었다.
나는 그리 해본 적도 없었고, 할 자신도 없다.
나야, 늘 내 한 몸 고통으로 울 엄마 애만 태우는 불효녀인 것을...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친구가 친정 엄마 모시고
서울 어느 병원에 검사 받으러 갔다가,
한 두 주 입원 생활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에,
이렇게 또 한 해를 기적처럼 지나가게 해주시나 보다... 했었다.
내가 이식을 받고,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는 모습을 보며,
친구는 제 일처럼 기뻐했었고, 저희 엄마도 꼭 이식을 받아서
좋아질 날이 있으리란 실낱같은 희망을 갖곤 했었다.
어제 오전에, 그 친구의 엄마가 새벽 6시 반에 소천하셨다는
메시지를 사랑방 목자로부터 받았다.
금방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고, 친구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
옴을 느끼며 머릿속이 텅비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친구가 겪어온 온갖 일들이 한꺼번에 다 떠올랐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일어나지 않다가,
몇 시간 뒤에 한꺼번에 감정이 밀물 밀려오듯 밀려왔었다.
어제 저녁에,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엄마가,
미국 가서 자식들 다 만나고 돌아와 딸이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
앉아 오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지난 날들을 회상하는 중에
그대로 임종을 맞았고, 그 엄마의 시신을 붙들고 안된다며 오열하는
여주인공을 보며, 지금 친구도 저러고 있겠지... 그 다음엔 저 모습이
바로 나일까... 싶자, 그제서야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엄마를 잃는다는 것은, 내가 나온 모태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애닳고 가슴 미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별의 아픔을 어디에다 비할까.
오늘 오전에, 사랑방 자매들과 함께 조문을 갔었다.
오늘따라 왜그리 가슴을 여미게 하는 찬바람은 휘몰아치는지...
엄마를 떠나보낸 친구의 얼굴을 보면, 눈물부터 날까 마음을 다졌다.
검은 상복을 입고, 맨얼굴로 초췌해진 친구의 모습을 보니...
다들 손을 잡아주는데, 나도모르게, 친구를 양팔로 꼭 안았다.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눈물이...
그래도 친구는 평안해 보였고, 담담하게 그간의 일을 간증하듯
들려주었다. 들을수록 그 순간순간마다, 그 과정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안 미치신 곳이 없었고,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까지도 또렷한 정신으로,
온 가족들과 회포를 다 푸시고, 하나님께로 간다는 믿음으로 견디셨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다 수순대로 진행이 됨을 알게 되면서, 슬픔은 평안으로 변했던 거였다.
그 얘기를 들으며, 울 엄마도 그렇게 가셔야 하는데... 도무지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니...하며 내가 말을 잊지 못하자, 곁에 있던 또 다른
친구가, 얘 또 운다...며 등을 쓸어주었다.
울 엄마 뿐아니라 그렇게 가는 것이 날마다의 내 기도인데,
부디 그 기도대로 살다가 가기를 어느 때보다 더 간구하게 되었다.
문상을 하고, 식당에 와서, 도우미들이 차려주는 음식들을,
다른 자매들은 잘 먹는데, 다른 한 자매와 나는,
그리고 상주인 친구는, 음식이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다고,
먹으면 체할 것 같다고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그간의 기적같은 일들을 들려주는 친구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었다.
친구의 엄마 영정 앞에,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고 뒤로 물러나
기도할 때, 코끝이 찡하고 목이 매이며 결국 또 눈물을...
"ㅇㅇ어머니, 이제 편안하시지요? 주님 곁에서 안식을 누리시지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고, 정말 잘 견디셨습니다. 저희도 금방 갑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뵐 때까지 우리 주님 찬양하며 잘 지내세요..."
일어나 영안실을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친구를 가슴에 안아주며
말없이 그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돌아서다가, 제발 뭐라도 좀 먹어. 그래야 버티지. 안 넘어가면
마시는 거라도 자주 마셔...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마음이...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았다.
난, 조문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여러 해전에, 내 오랜 친구의 시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조문한 것이 처음이었고, 오늘이 두 번째였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내가 투석하는 중에 유달리 그런
조문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못갈 상황이거나 상태였었다.
못다한 조문을 시작하는... 그 첫걸음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짙은 회색빛 모자와 연회색 스웨터 외에, 검정 외투, 검정 바지,
검정 스카프, 검정 신, 검정 가방까지... 온 몸을 검정색으로 감싸고
나서보기는 처음이었고, 앞으론 그 모습이 더이상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이것도... 거쳐야 하는 인생의 한 과정이라 여겨진다.
이 나이 먹도록, 나처럼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경험이 적은 이도 드물거다.
이것도 다, 주님이 내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상태가 될 때까지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신 덕분이라 여긴다.
여지까지는, 떠나간 영혼보다 남겨진 영혼들이 안됐어서 울었지만,
머잖아 떠난 영혼들을 위해 애통해 할 날이 올 것이다.
더우기, 하나님을 믿지 않고 떠나는 그 불쌍한 영혼들로 인한 애통함이...
언제고 맞을 그 다음 나의 마지막 인생 과정까지...
모쪼록 잘 인도해 주시기만 기도할 따름이다.
그분 안에서, 그분 뜻대로,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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