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이란 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이,
무슨 크고 중대한 일을 두고 하는 말만은 아닌 듯하다.
어렵고 힘든 상황<사는 것이...>이 나와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사고방식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보니,
늘 내일 일을 염려하고, 되도록이면 곤란한 지경에 빠지지 않게끔
준비<뭐든 줄이고 쓰지 않으려는 걸 굳이 준비라고 한다면>를 하는
편인 나와는 달리,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인
믿음 좋은 친구는, 내일보다 오늘을 누리고 즐기는 편이라 할 수 있다.
어려워도 영화를 관람하는 여유와 제 주머니를 털어서 어려운
이들을 돕고, 선뜻 밥이든 차든 앞에 나가 사고... 하는 친구와 달리
나는 대접<얻어 먹는다...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이니까.^^>받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빚진 것 같아, 차라리 그 자릴 피하고 되도록이면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었다.
편이었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이지만은 않더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고, 인생이란 게 때론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어서, 그런 나를 조금씩 버리기,
혹은 바꾸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나는 원래 영화를 많이, 정말 좋아했다.
책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젊은 시절, 한창 비디오 가게가
동네마다 자릴 잡고 있었을 때, 하루가 멀다하고, 아니 하루에도
몇 편씩 비디오를 빌려다 수많은 영화들을 보며 거기서 배운 게
많았었다. 시청각적 교육이었다고나 할는지...
아무리 어둡고, 그래서 계단에 넘어지고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 멍이
들었어도, 나라고 왜 넓은 스크린과 실감나는 음향을 접하며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그렇게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보는 것도 나름 즐기고,
만족할 줄 알아야만 마음이, 삶이 평안할 수 있다고 여겼었다.
그렇게 할 수 없고, 안되는 처지를 불평하고 비관해 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만 속이 상할 뿐이니까...
친구가 곧잘 조조할인 영화나 다른 시간대의 영화를 보러 가자고
나를 불렀어도, 투석을 핑계<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대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감염의 위험이 있다는 식으로...
한 번도 그 청함에 응하지를 않았던 내가, 어제 이목사님의 권유
한 마디에 오랜 세월의 극장 출입 안하기+못하기를 끝내고,
또 다른 친구한테 영화보러 가자고 연락을 했었다.
그러자...했던 친구는, 요즘 치료받고 있는 신경통증이 더 심해져서
병원 가기가 급해 다음날로 하자고 미루게 되었었다.
해서 오늘은 영화 볼 날이 아닌가 보다...며 체념하고 있었는데,
어제 함께 영화를 본 친구가, 이미 저는 봤으면서도, 기꺼이 나를
배려해 주듯, 별일 아니란 듯이, 한 번 더 보지, 뭐...하면서
동행해 주었던 거였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나혼자 영화를 본 건 딱 한 번이었고,
이십 대 어느 중반 가을날에, Sandra Block의 '당신이 잠든 사이'를
어느 소극장에서, 모두 합해 셋도 안되는 관람객 중 하나가 되어
봤던 게 첨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로서는 난생 첨 시도해보는 가슴 뛰는
경험이었다. 그 날 이후 Sandra와 그녀의 연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늦장을 부리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연락과 제의에
서두르느라 밥도 급하게 먹었고, 촉박한 영화 상영 시간에 맞추느라
혼자 부산을 떨었다. 늘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나에게서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라고나 할지...ㅎㅎ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서 있는데, 정류장 뒤로 이 비싼
동네 땅값에 맞지 않게, 넓디 넓은 주차장을 보란듯이 갖고 있는
일식집 마당에 활엽수들의 주검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저께 저녁부터 밤새 내린 비에 낙엽들이 많이 진 모양이었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떨어져 쌓여있는 낙엽을 보긴 올들어
처음이라 눈길이 자꾸 갔다.
어젠 차지는 않지만 바람도 제법 많이 불었다.
넓다란 이파리들이 그 바람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 쓸리고 저리 몰리며
한 번씩 회오리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춤을 추듯 장관을 이루었다.
혼자<이미 몇 대의 버스들이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그때 정류장엔
나만 있었다> 보기엔 정말 아까운 장면들이었다.
등에 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 장면을 찍고픈 마음이 동했지만
그냥 그 새들의 군무와 같은 낙엽들의 군무를 내 눈에 마음에 담기로
하고, 그 순간을 즐겼다. 마치 나만을 위한 군무인양~~
해마다 가을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방송에서는, 밀양의 '사자평'
그 백만평이 넘는 억새밭을 보여주며 오라고 유혹을 했었고,
그 어떤 산도 오르고 싶은 마음이 없던 내가 그 억새밭, 영남의
알프스라고 불리우는 그 밭에는 늘 가고픈 마음에 꿈을 꾸었었다.
마침 블친꼐서 내 상황과 상태를 고려하셔서, 거기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고, 비교적 평지라 나같은 사람이 가도 그리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친절히 설명도 해주셨다.
나로서는 어렵게, 그러나 기대를 걸고, 가보자...는 말을 건넸지만,
원래도 어디 멀리 가는 걸 즐기지 않는 친구는 아무 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인 후 더는 뭐라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했었다 공연히 부담을 준 것 같아서...
누굴 탓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가지 못하는 나의 소심하고 심약함이 문제라고 밖에는...
올 가을은, 이렇게 또 한 번 '사자평원'을 향한 내 마음을 접지만,
그리고 다시 내가 가을을 맞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내 감각없는 두 발이
다음 가을에도 지금처럼 다닐 수 있도록 견뎌줄 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그곳을 향한 내 꿈과 바람은... 여전할 것이다.
거기서... 나는 수많은 억새들의 춤사위를 내 눈으로 직접 보리라...고.
드넓은 억새밭 한가운데서, 나의 인간적 바람을 이루어주신 주님을
찬양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향처럼 피워 올려드릴 것이다.
그 날을 내게 주실 것이라 믿으며 살아야지...
내 생애 이번 가을처럼 유감없이 보낸 적이 없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하기에,
기약할 수 없으나 '다음'을 기대하게 하시는 것에 무한 감사를
드릴 따름이다. 지금은... 이로써 족하다.
'다음'을 기대하고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행복을 누리지 못한 지난 세월들을 생각해서라도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다음'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려야지...
기다림...은, 때로 삶의 실낱같은 희망이 되고, 이유가 되고,
심지어 목표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오랜 세월 기다림에 지친
나같은 존재에게조차 아름다운 의미의 단어가 되어 다가온다.
나도...
나의 이 '중구난방' 식의 글이 참... 민망하다. ㅎㅎ
'다음 가을' 에 꼭 가보고 싶은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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