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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 stories

양동 마을에서~~^^

by IMmiji 2013. 11. 2.

 

오늘 아침 9시에 대구 동부 시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5분마다 있다는 포항행 버스를 탔다.

주말이라 그런지, 이미 리무진<?>버스에는 자리마다

한 두 사람씩 다 앉아 있었다.

다들 앉으라는 듯이 옆자리를 비워두고 한쪽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못본 것처럼 그 자리들을 다 지나쳐서,

맨 뒷자리로 가서 한쪽 끄트머리에 앉았댔다.

거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고 비워져 있었으므로...^^

 

아...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일 뿐임을 일 분도 채 안되어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등산복을 입은 세 명의 아주머니들이 나의 옆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앉아 수다 모드로 바로 들어가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

서로에게 권하는 것으로 부족해 내게도 음식이 든 통을

내 의향도 묻지 않고 당황스럽게 바로 코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침밥 든든히 먹고 나왔다며 정중히 사양을 했지만,

삶은 밤과 꿀을 약간 넣어서 덩어리를 만들어 얼린 거라며,

밤이 얼마나 사람 몸에 이로운 것이가를 한참 얘기하더니,

다시 내게 그것을 권하는데, 더는 사양할 수가 없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하나를 집어 들고 입에 넣었는데,

그 차갑고 텁텁한 느낌에 미처 익숙해지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다시 생강을 달인 물에 꿀을 넣은 거라며,

묻지도 않고 종이컵에 그 물을 따라서 내게 건네 주었다.

얼떨결에 받아들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고갤 살짝 숙였다.

 

아직도 내 입 안에, 그 꿀 넣은 밤이 그대로 있는데,

하나를 더 권하는 바람에,

입에 있다는 뜻으로 입을 가르켰더니,

이번에는, 커피를 한 잔 주겠다고 했다.

내 손에는 좀전에 받은 그 꿀 넣은 생강물이 그대로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내가 왜 주는 것들을 다 받을 수 없는지,

당뇨가 있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아주머니는 이해한다면서,

그럼, 조심해야 한다고, 그런 얘긴 해줘야 된다며 더는 권하질 않았다.

 

그러나 음식을 권하지 않는 대신,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얘기가

시작되고, 그 얘기는 포항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한 시간여 동안, 나는 그 아주머니가 수십 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것과,

대학에서 무슨 전공을 하고, 상담과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 그 공부도 했고,

지금은 원래 자신이 전공하고 싶었던 유아교육의 꿈을 유치원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풀고 있다는 것과 30년전 첨 했던 해외여행과

이번 주에 다녀온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가족 사항과 폐경기와 함께 찾아온 2년여의 우울증의

끔찍한 증상과 극복기에 이르기까지...

아주머니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을 맞추느라,

고개를 아주머니가 있는 쪽으로 내내 돌리고 있어 목이 아팠지만,

나름의 삶의 철학과 개념과 트인 사고방식으로 펼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들을만한 것이었고 배울만한 것이었기에,

오십 대 중반이라는 아주머니와 사십 대 중반의 내가 나이를 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갔다...

 

마치 대학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낯선 이와의 만남이 그렇게 즐거울 수 있고,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나로선 놀라울 뿐이었다.

마침내 포항에 도착해 함께 버스에서 내리며,

거기에서 다시 강구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아주머니에게, 

즐겁게 잘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유쾌하게 손흔들어 주면서,

나는 나의 친화력<?>에 새삼 감탄을 했다.

나는 자신이 그렇게 사교성이 있는 줄 미처 몰랐었다.

 

아무튼, 사설이 길었지만, 이것도 오늘 내 나들이의 시작이고,

내게는 나름 의미있고 즐거운 출발이었기에 적어본 것이다.

글이 너무 길다고,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다는 소릴 들었는데,

이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고 스타일인데 어쩌랴...

 

         

 

터미널에 도착해서 전화를 하니, 

터미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동생이 바로 받았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입구라고 적힌 쪽으로 나갔더니,

저편에서 나를 발견한 동생이 뛰어와서는,

내 손을 잡고 제부가 기다리는 차로 달리기 시작했다.

주차해서는 안되는 곳에 서 있어서 빨리 가야한다고...

 

뒷좌석에 타고 있던 조카 옆에 타고,

지나왔던 긴 터널을 다시 달려 우리는 '양동마을'로 향했다.

불과 일이십 분 거리였지만, 양동마을은 포항이 아니라

경주에 속한 곳이었다.

오늘 나는 그 긴 터널을 네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일단 왔으니, 양동마을이라는 인증샷을 남겨야지... ㅎㅎ

양동마을 소개에 보면,

경주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약 500여 년간 대를 이어

현재까지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마을이고,

지난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불과 몇 년전에, 엄마를 모시고 동생네가 왔을 때만 해도,

입장료가 없었고, 이러저러한 건물이나 시설이 없었다고 하는데,

지난 정부가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서 엄청 달라졌다고 한다.

나야, 첫 방문이니, 전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지만,

실지로 한 번에 그렇게 많은 한옥과 초가집을 본 건 처음이지 싶다.

 

 

 

 

 

 

 

마을 입구에 백 년이 넘은 양동 초등 학교가 있다.

전에는 이런 건물의 형태가 아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여기에서 여러 체험 학습들이 많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간 오늘,  마침 양동 초등 총동창회를 한다고

한쪽에서는 천막을 치고 뭔가를 준비하느라 부산스러웠다.

그 한 쪽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랫만에 동생이랑 포즈를 한 번 취해봤다.

닮지 않았다고, 어릴 때부터 우릴 자매로 아는 이들이 없는데,

사진으로 보니, 그렇게 영판 다른 것 같지도 않다. ^^

 

 

 

나도 보통 키<160cm>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는 볼 때마다 자란 표가 난다.

표정은 다소 뚱한 듯한데, 알고보면 엄청 웃기는 아이다.

생각도 깊고, 되받는 말솜씨를 당할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제부랑 이렇게 사진을 찍어보긴 처음이다.

팔짱까지 자연스레 끼고서 포즈를 취하는 나나,

귀여운 손짓까지 곁들이는 제부나...

우리 두 사람 다 숫기가 없어 생각이든 감정이든

표현을 거의 하지 않고 서로를 대해왔고,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친밀감을 보이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전에 없이 넉살이 좋아진 제부의 언행에

내심 많이 놀랐고, 한편으론 재밌고 귀엽기까지 했다.ㅋㅋ

 

 

 

 

여긴 양동마을 문화관이라고 하는데,

이 건물도 전에는 없었다고 한다.

제법 잘 꾸며놨고 볼거리도 많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여러 가지를 폰에 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흐릿하게

나와서 이것만 올렸다.

 

 

 

 

 

 

 

 

 

 

 

꽃이나 나무도 전에 없이 폰에 담았는데,

어느 집 담벼락에 소담스레 핀, 그리고 계절을 잊은

민들레가 섞여 있어 그것만 올려봤다.

그리고 정말 오랫만에 본 볏단들도 같이...

자그마한 채마밭이 군데군데 담을 따라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마을 한가운데에 못이 있고, 거기에 수련이 가득 들어있었다.

바로 위에 보이는 큰 한옥은, 원래 99간의 대저택이었는데,

지금은 3분지 1정도로 준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보기보다 뒤로 갈수록 더 건물이 많고,

마치 해외의 어느 성을 보는 것처럼 기품있게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서 한 컷 담았다.

지나는 이들마다 그 앞에서 필수 코스인 것처럼 사진을 찍었다.

첨엔 고약한 냄새가 나서, 시골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그 냄새의 진원지는 바로 이 은행나무였다.

동생네 세 식구를 첨으로 직접 사진을 찍어봤다.

아빠를 닮았다고 하면, 조카가 엄청 싫어하겠지만,

그러나 가족이 모두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모습 이대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여긴 마을에서 맨 윗쪽이다시피 위치해 있는,

관가정이란 곳인데, 보물 442호란다.

중종 때,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우재 손중돈의 옛집이라나...

문화해설가의 말에 따르면, 이 시대에는 마당이 넓지 않은 게

요즘 말로, 트렌드였다고 한다.

 

 

 

 

담 앞쪽에 높이 30cm, 너비 50cm 정도의 납작하고 둥근 돌이 놓여 있다.

거기에 올라가서 이 관가정 담 아래 동네를 내려다보는 용도 같은데,

거기 올라가서 이 사진을 찍고 내려서다가 넘어져서 손바닥이 까졌다.

감각없는 발대신 발목으로 힘을 받으려니 나도모르게 그만...

나야 흔한 일이라 괜찮은데, 제부와 동생이 많이 놀랐다.

옆에 꼭 누가 붙어서 잡아줘야겠다고... 제부가 걱정스러워 했다.

공연히 염려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고 민망스러웠다.

 

 

양동마을에는 이런 멋있는 돌담과 예쁜 길들이 참 많다.

온 동네가 다 그런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걸으면 절로 사색 무드가 된다고나 할는지...ㅎㅎ

 

 

 

 

 

 

 

 

 

 

 

 

여기가 향단인지... 수운정인지...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집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에선 아이들과 남자들이 둘러서서

떡메를 치며 힘자랑을 하고 있었고,

마루에서는 여자 아이들과 부인들이 한과 만들기에 열중이었다.

내 옆에 있는 커다란 솥이 한과를 튀겨내는 그릇이다.

 

창문처럼 나있는 곳 너머의 풍경이 무척 예뻤다.

액자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그래서 연거푸 폰에 담아봤다는 소문이~~^^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피하는 조카를 붙들어,

얼굴을 앞으로 향하게 하다가,

급기야는 도망가지 못하게 꼭 안아버렸다.

이모의 거친 행동에 장난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어느 집 앞을 지나가다가 대문이 살짝 열려있는 걸 보고 한 컷!

집 앞마다, 길가마다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 있다.

이 동네에는 집집마다 대문이 특이하고 무척 참하다.

 

 

 

 

 

 

 

 

서백당으로 가는 길에 몇 장 담았다.

이제 서서히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고,

아마도 다음 주 쯤이면 정말 곱게 물든 단풍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백당은, 경주 손씨 큰 종가라고 하는데,

손중돈의 외손이 이언적이라고 한다.

이 마을은 사위들이 잘 들어와 일으킨 곳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얼핏 들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여기가 서백당 안뜰이고,

내가 서 있는 뒤의 나무가 수령 400년이 넘은 향나무이고,

그 위의 사진이 바로 오래된 그 향나무의 몸통이다.

향나무 뒤로 사당이 있고,

서백당은 거의 600년이 다 된, 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집이란다.

 

 

 

 

 

서백당 바로 앞 도로에 누가 일부러 흩뿌려놓은 듯한

낙엽들이 너무 예뻐서 담아봤다.

대부분의 길이 흙길이라 신에 흙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그럼에도 길을 걷는 운치는 어디에도 비할 바가 없을 정도였다.

나의 체력을 배려해 준 제부와 동생이 마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을 둘러보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저희는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라고 해서 미안한 마음이 덜했지,

처음이었다면 엄청 미안했을 것 같다.

 

 

제부가 양동마을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끝판을 찍고 가자며 서보라고 해서 이렇게 함께 찍었다.

다섯 살이나 적은 동생이, 늘 이 언니를 제가 언니처럼 챙겨주고,

보듬어주고, 친구처럼 대해줘서 늘 고맙다.

오늘도, 동생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기꺼이 동행해 준 제부가 아니었다면,

나혼자 어떻게 이런 곳에 와서 여기저기 다녀볼 생각을 했겠는가.

 

오는 길에, 그대로는 보낼 수 없다며,

저희집에 가서 좀 쉬고 저녁밥도 먹고,

나한테 주려고 햇김도 준비해 뒀으니 꼭 가져가야 한다며,

터미널에 바로 가자는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차 안에서 동생이랑 한참 실랑이를 벌였었다.

제부는 자기 아내 말이 법이라고 자꾸 어쩔 것인가를 묻고,

나는 동생보다 내가 더 위니까 내 말대로 하라고 몰아붙이고...

 

무겁지 않으니까, 그리고 진짜 맛있으니까 가져가라는 걸,

무거워도 내가 필요하면 가져간다고,

그치만 아무리 맛이 있어도 필요없으니 너희들 먹으라고,

손에 아무것도 들고 가고 싶지 않다고 고집을 부리니,

어찌나 서운해 하던지... 미안했지만, 괜히 다시 집에 갔다가,

나를 배웅해 주러 터미널로 또 가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해서 결국 내 고집대로 터미널로 갔고,

바로 집으로들 가라고 했음에도 다 내려서 나를 배웅했다.

 

앞으로 수없이 또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늘 그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시는 못볼 것처럼 애틋함을 갖고

헤어지고 싶은 마음에, 조카부터 꼭 끌어안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제부에게는, 애정 표현 전혀 못하는 처형이 애써 악수라도 하려고,

손을 내미는데, 나보다 더 숫기없는 제부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생을 두 팔로 안아보고...

뭉클함을 안고 뒤돌아서며 손흔들고 버스에 올랐다.

 

 사람 많은 그 터미널에서, 그런 우리를 보면,

볼 수 없는 어디 먼 곳으로 떠나는 줄 알겠지만,

한 번이든 열 번이든 난 앞으로 그렇게 안아주고 싶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 두 팔 안에 안고,

내 가슴으로 따습게 품어보고 싶다.

 

어쩌면 오늘 난,

양동마을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아보러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러 본 양동 마을의 이곳저곳은 벌써 기억에 희미해도,

포옹의 기억은 너무나 또렷하게, 가슴 아리게 남아있으니 말이다.

보고팠다, 그리웠다, 사랑한다... 그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안아줌이 더 절실하고 확실한 표현인 것을...

 

혼자 시외 버스 타고 가본 지도 십년이 넘었다.

조카가 세 살 때 혼자 포항 가는 시외 버스를 탔던 게 마지막이니까.

그 조카가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함께하는 여행도 좋지만, 멀든 가깝든 때로 혼자만의 떠남도,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비로소 깨달았다.

내게 더없이 소중했고, 의미있었고, 즐거웠던 나들이였다.

 

포항으로 가던 버스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씀처럼,

죽음과도 같던 우울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은 그분이나

다시 한 번 더 일상의 기회를 넘치게 누리게 된 나나,

그저 생이 끝나는 날까지 감사함으로 사는 일만 남았다.

누군가 우리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받은 조카의 그림이다. ^^

조카는 이런 그림을 날마다 그리면서 정말 즐거워한다.

가족들을 모두 오리화하여 나타낸 표현들이 재미있다.

이모 방문 기념 1일전인 어제 그린 그림이란다. ㅎㅎ

곽마미는 저희 엄마이고,

외할머니<울 엄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은 고만고만하게

그린 반면에, 이모인 나는, 언니도 아니고 저희 엄마의 형이라고,

왜냐하면 첫째니까!  저렇게 크고 강하게 그려놓았다. 

제 엄마보다 더 대단한 사람은 없는데,

이모는 그런 엄마의 '형'이니까... ㅋㅋ

종종 이런 그림으로 가족들을 즐겁게 하고,

나한테도 한 번씩 보내줘서 큰 웃음을 짓게 한다.

사랑스런 조카, 비야~~ 우리 또 같이 즐겁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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