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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야기

다시 한 번 가을을 살면서...

by IMmiji 2013. 10. 26.

 

나는 낯선 길을 다녀본 적이 거의 없다.

세상 살면서, 이만큼 나이를 먹도록,

행동 반경이 나만큼이나 좁고 한정된 이도 드물지 싶다.

 

새로운 사람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었고,

늘상 보던 사람들만 보고 그 사람들만 알고 지냈다.

그래서인지, 몇 번 보지 않은 사람은 잘 기억하지도 못한다.

 

상대방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오는데,

난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 난감하고 당황한 적도 적지않다.

누구냐고 묻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선뜻 아는 척도 할 수 없는

그런 곤란한 상황이 불편하다못해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게 되고,

심지어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숨기까지 했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두려움, 낯선 곳에서의 불안에다,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대인 기피증까지...

참 가지가지로 사회 부적응적인 삶을 살아왔다.

 

친구라고 이름할 수 있는 이들도 다섯 손가락이면 충분하고,

그나마 전화 통화하고, 얼굴 대하고, 가끔씩이라도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는 '진짜' 친구는, 지금 현재로는 딱 둘 뿐이다.

그리고 사랑방 자매들, 영어성경 공부서 보는 언니들같은 '지인들' 몇 사람...

그 외에는 모두 '실제'가 아닌 간접적인 교제들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이제는 그 간접 교제가 내 삶의 '주'가 된 듯하다.

 

어쩌다 내 삶이 이런 식으로,

고립되고 격리되다시피 했는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겠지만,

질병으로 인한 상황이나 생활 환경으로 인한 요인들에 의해,

기나긴 세월에 걸쳐 이렇게 '나'가 '삶'이 형성이 된 것 같다.

정작 내 본래의 성격이나 성향이 어떠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늘 가던 곳만 가고, 늘 다니던 길만 다니고,

늘 보고 만나던 사람들만 보고 만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 

답답하고 무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위험하다고, 혼자서는 안된다고, 너는 할 수 없다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보다 언제나 더 무서운 말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 잘해야 된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감히 일탈을 꿈꾸거나 도전, 시도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게 하는

단단한 '틀'이 되어 그 속에 가두어졌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원한 적이 없었다.

하고 싶어서 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내가 아닌,

딸을 그렇게 잘못 키운 엄마가 고초를 겪어야 했기에,

내 속에 불만과 반발심이 산처럼 쌓였어도

나는 '착한' 딸노릇을 싫든 좋든 해야만 했다.

세월은 그런 나를, 세뇌시키듯이 조금씩 길들여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주어진 한정된 여건과 허락된 좁은 세상 속에서

'나름'의 변화를 추구하곤 했었다.

예를 들면, 어제처럼, 영어성경 공부하러 Y~에 갈 때도,

늘 내리던 버스 정류장에 내리지 않고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고,

거기서 늘 다니던 대로로 오지 않고

대로 안쪽의 좁은 동네길<아래 사진 속의>을 걷는 식으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시도의 까짓것이었지만, 

큰 것만 변화가 아니라며 자위하고 살았다.

작은 것, 지극히 사소한 것, 너무 사소해서 표도 안나는 것들...

그래도 변화를 맛보고 싶어 나대로의 몸부림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알아주지도 않지만,

그런 나를 스스로 다독이며 거기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곤 했다.

내게 주어진 여건에서의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딴에는 '애씀'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켜보는 눈들과, 의지대로 되지 않는 건강과,

내 힘으로는 아무 짓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들 속에서,

어쩌지 못하고 그저 참고 견디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나를,

용기없다, 어리석다, 답답하다...고 하고,

변명이나 핑계나 된다고 하면 그건 내게 돌을 던지는

일이겠지만, 던지면 맞을 수밖에 없다.

뚫려있는 유일한 공간은 하늘 뿐인데,

그 하늘이 허락해주지 않는 것을 내가 누릴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내가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쓰고픈 마음이 문득 생겼었다.

카테고리에 'About me'라고 올려놓은지도 두어 달은 더 된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줄도, 아니, 단 한 단어도 적지를 못했다.

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아니, 그렇게 이 땅에 던져지기 이전의 일까지 적어야

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풀리려다보니,

본의아니게 너무 여러 사람들을 심판대에 세우는 것 같아서,

차마 시작할 수가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쓴다고 하지만,

그 사실에 등장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고, 피하고 싶고, 드러나는 걸 결코 원치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들이 남이 아니라, 내 가족이고, 가까운 이들이기에... 더 어렵다.

그들도, 살려고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랬다...싶겠지만,

얼마든지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안함과 후회가 섞인 용서를 이제 내게 구하는 것이리라.

 

아무튼,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이제와서 어쩌겠냐고...

내게 피해의식이 있다면, 그걸 그냥 가지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지만 더는 그런 피해의식을 가지고 싶지 않고,

나 자신을 피해자로 남겨두고 싶지도 않다.

내가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가해자로 설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 나더러 '희생자'라고,

희생을 너무 많이 했다고 자꾸 언급을 한다.

내가 원해서, 내 만족으로 자원한 것이었다면

그건 결코 희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해서 본인인 나보다 그들이 '희생'이란 말을 더 하는 것일 게다.

살다보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모양이지만,

누구도 기꺼이 그 '소'가 되려 하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그 지난 시간들이 아니라

그 상황들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끊임없에 내게 이해와 용서를 구할 일들을 한다는 거다.

그들이든 나이든 어느 쪽이든 세상을 떠나야 끝이나겠지...

그래서, 이제는 내가 달라지고 변하리라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전에는 달라지고 싶어도 그게 안되었다.

안되고 못하고... 움쩍달싹을 못하게 했으니 말이다.

 

상황은 그대로이고, 오히려 더 좋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달라져야 한다고, 그래야 남은 인생이라도 숨쉬고 산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다...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 날마다 생존을 위해 투석을 하고,

무겁고 고통스런 몸뚱아리 부여잡고 견뎌야만 할 줄 알았는데,

위험하고 힘든 난관이었지만 기적처럼 통과하게 해주셔서,

다시 예전처럼,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예전처럼 돌아가게 하셨다.

 

새로운 기회를 부여받는다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내 처지와 형편을 바꾸거나 주변 상황을 달라지게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자신, 내 마음, 내 생각은 바꿀 수 있으니까.

물론, 그것도 손바닥 뒤집듯이 쉬운 건 아니다.

쉬웠으면 이러고 살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만한 대가가 따르고 삶으로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여실히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 대가가 때론 너무 호되고,

아슬아슬할 정도로 위험부담도 크지만,

그냥 그대로...인 것보다는 낫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너무나 불리한 상황이지만,

시도의 몸짓으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낯선 곳에도 가고, 익숙치 않은 상황에도 들어가보고,

조금은 무모한 듯한 행동도 해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너무도 어렵게 얻은 이 기회를 도박하듯이,

가는대로 가보자 대이는대로 살아보자...는 식으로 쓸 수는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겠지만,

나자신도 극도의 민감함으로 최선을 다해 지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상황도 몸상태도 주어진 조건이 너무 나쁘니까...

가끔씩은, 평지에서도 중심을 못잡아 비틀거리는 내가,

아득히 높은 데 매인 외줄을 타는 기분이 든다.

내 힘이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탈 수 없는 줄 위에 혼자 있는 듯한...

 

그분이 내민 손을 잡고,

평지를 걷듯 줄 위를 한 발 한 발 편안한 걸음으로 걷는데는,

오로지 그분에 대한 신뢰와 의지, 사랑만 필요할 뿐이다.

그 줄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하시려고 내게 새로운 기회를 주신 건

절대 아니라는 그 믿음으로... 날마다 줄 위로 발을 내딛는 게,

내게 허락하신 삶이고, 내가 걸을 인생길이 아닌가 싶다.

평지를 걸어도 나혼자 내 힘으로 걸으면 수없이 넘어질 수밖에 없다.

외줄을 타도, 내 손을 잡아주는 그분의 강한 손이 있으면,

보호하심 속에서 나는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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