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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 stories

moderato

by IMmiji 2013. 10. 19.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해도,

낮에는 덥게 느껴지기까지 하던 날씨가,

변덕을 몇 번 부리는 사이에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단 둘이 가는 나들이라도,

서로의 시간과 여건과 컨디션을 맞추려다보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것이 아니었다.

하나가 되면 다른 하나가 안되는 식이라...

 

그런 중에 날씨마저 갑자기 추워지니,

이러다 잡을 틈도 없이 가을이 가버리는 게 아닌가...

공연히 조바심마저 생기던 참에,

아쉬움이 남지 않게, 가까운 곳으로 가보자...며 나섰다.

 

위의 역사<驛舍>는 경주역이다.

도착했을 때 찍고 싶었지만 그땐 내리는 사람들도 많고 해서

올 때, 한산할 때 한 컷 폰에 담아봤다.

 

대구선 무궁화 열차를 타고,

한 시간 이십 분 남짓 덜컹거리고 흔들리며 가는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설레었다.

막내 동생이 입대하고, 군으로 면회 갈 때 타본 뒤로 처음이니,

적어도 십 오년은 더 된 것 같다.

 

 

해외 편지 친구들이 보내주는 아름다운 관광엽서를 받고,

답례로 나도 그런 멋진 엽서를 보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대구에서는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비교적 대구에서 가까운 곳이고,

역사와 관광지를 소개하는 엽서를 구할 수 있는 곳이라,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경주로 갔었다.

 

그렇게 다녔던 경주행도, 

결혼과 투석이 시작됨으로써 끝이났다.

이번의 경주행이 내게는 정말 오랫만이었다.

전에는, 늘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서 다녔었는데.

기차를 타고, 경주역에 내려보기는 처음이었다.

 

경주에는, 먹을 것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았다.

유명한 경주 황남빵과 쌈밥~~^^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황남빵을 판매하는 가게들이고,

우리가 가는 길에 보이는 음식점은 쌈밥집들이었다.

역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 들러 아가씨의 설명을 듣고,

택시를 타고 가려던 생각을 바꿨다.

해서 대릉원<그 안에 천마총이 있다>까지 걸어 갔다.

 

대릉원 돌담길 맞은편으로 이어지는 쌈밥집 가운데,

한 곳으로 무작정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그 '쌈밥'을 주문했다.

뭔가 잔뜩 차려져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내 입에는 대체적으로 음식들이 짰다.

이 많은 쌈밥집들 한 가운데에 비빔밥 집을 차리면

대박날 것 같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며 나왔다. ㅎㅎ 

 

 

 

 

 

 

 

 

바로 이 돌담길 건너편에 띄엄띄엄 쌈밥집들이 줄지어 있다.

이 돌담길을 마지막으로 걸어본 것이... 아, 그게 언제였더라?

내 오랜 친구와 그 친구의 동료였던 ㅇ선생이랑 같이 걸었었지...

그때 우리가... 이십 대 중후반이었던가?

아날로그 카메라뿐이었던 시절이고, 휴대폰조차 없던 때라,

자세 잘 잡고, 촛점 잘 맞춰서 신중하게 찍어야만 했었다는~~ ㅋㅋ

이 길을 걸으면, 대릉원에 설치해둔 스피커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그 분위기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바로 '낭만'이라고나 할까!!

그 낭만을 느껴보려는 듯이 돌담에 손을 대고 한 컷~~^^

 

 

 

 

 

 

 

 

 

 

 

 

 

 

 

 

 

 

 

 

 

 

십여년 전 왔을 때도, 평일이라 고요했었다.

하긴 있는 건 소나무요, 무덤 뿐인 곳이 고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때도 가을이었고, 소나무향이 취할 듯 진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왕들의 무덤들이 모인 곳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변한 건 사람인 나 뿐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들 사이를 한가로이 거닐며,

왕이든 평민이든 종이든...  죽은 자들은 말이없는데,

죽은 뒤까지도 굳이 신분의 차등을 두려는 듯,

왕은 이리 큰 무덤에, 평민은 작은 무덤에,

종들은... 무덤마저도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나라는, 정작 그런 민초들이 다 지켜온 것인데...

 

하긴 왕의 무덤이라 돌담길로 잘 감싸두고, 

그래서 그 무덤 보겠다고 찾는 이도 있고,

더우기 입장료까지 내야 들어가 볼 수도 있으니 참...

몇 백년 지나지 않아 어디가 무덤이었는지도 모르게

평지가 되고 길이 되는 게 보통의 인생살이들인데,

천 년이 지나도록 이리 관리되고 지켜지고 있으니...

그래서 그리들 왕이 되려고,

권력을 가지려고 피비린내나게 싸웠나?

 

아무튼. 우리는 그런 왕들과는 상관없이,

그 여유로움과 한가로움을 즐기고 싶었다...

허나, 그 바람은 이내 깨어졌다는...

마침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을 단체로 만나는 바람에,

고요함은 물 건너 가고 말았다... 쩝.

선생님들마다 손에 메가폰을 들고 설명을 했는데,

사실 아이들보다 그 메가폰을 통해 들려오는

선생님들 소리가 훨씬 더 시끄러웠다.

그 아이들과 시끄러운 메가폰 소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다니며 남은 고즈넉함을 맛보고 대릉원을 떠났다.

 

 

 

여긴 대릉원 맞은 편에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인데,

바깥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왕은 아니고 그 아래 신하쯤<?>의 신분이었지 않을까...

혼자 추측해 봤다. ㅎㅎ

 

 

기차 시간에 맞춰 돌아오려고 대릉원을 나왔는데,

건너편에 '신라 문화 체험원'인가 분명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튼, 하얀 말들 형상이 보여서 다가갔다.

그냥 들어가도 되나...? 혼잣말을 하며 들어서는 나를

향기님이 뒤에서 부르는 바람에 돌아섰는데,

그때 찰칵!!하고 이렇게~~~^^

 

 

 

 

 

 

 

 

모두 다섯 마리의 백마가 있었는데,

한꺼번에 다 담을 수 있는 재주가 내게는 없었다.

이 말들이 조각이었기에 망정이지 살아있는 것이었으면,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멋있어도 이렇게 가까이에서는... ㅎㅎ

 

둘이 다니다보면,

꼭 한 두번씩은, 개나 고양이...를 만나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기겁을 하고 향기님은 일부러 오라고 부른다.

나를 놀리려고 재미로 그러는 줄 알지만,

난 정말 온 몸의 털이 다 곤두설 정도로 질겁을 한다.

그런 나를 보며, "미지씨, 정말 무서워하는구나!!"하고는 웃는다.

정말 장난꾸러기 개구장이 같다니까, 향기님은!!

 

 

놀랍게도, 대릉원 건너 도로변에 진짜 말과 마차가 있었다!

신데렐라가 탔을법한 멋진 마차였다.

하긴 그러기엔, 말도 달랑 한 마리 뿐이고,

마부가 좀 그렇긴 하지만...ㅋㅋ

조금 뒤에, 돌담길을 따라 역으로 걸어오는 중에, 

우리 곁을 이 마차가 지나갔는데, 달리는 마차를 찍으려니 어려웠다.

이런 마차가 두 대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체험원에서, 말이랑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시간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란 우리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생각지도 않은 경보 선수들이 되어야 했다. ㅎㅎ

급할 때는, 없던 능력도 생기는지, 위치 추적 장치라도 달린듯이,

지름길도 찾아내어 시간을 단축하기까지 했다. ^^

 

숨이 차도록 걸은 덕분에,

다행히 우린 늦지않게...가 아니라 여유있게 역에 도착했고,

한숨 돌린 뒤에 표를 사고, 느긋하게 기차를 기다리며,

맨 위에 올린 사진처럼 역사를 폰에 담는 여유도 부렸다.

 

제목을, Moderato<중간 속도, 알맞은 정도...>라고 한 것도,

이번 경주 나들이가 우리에게 딱 그랬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첨 역에서 만나던 것부터 시작해서,

날씨도, 시간도, 거리도... 모든 것이 우리에게 적당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우리 두 사람의 힘에 부대끼지 않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황과 상태였고, 

적당히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힘든...

하지만 충분히 즐거웠고, 충분히 만족했고, 충분히 행복했다.

그래서 오로지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감사의 고백'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보던,

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건대,

올 가을처럼 계절을 누리고, 그 아름다움을 누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 일체가 되어 보냈던 적이 없었기에,

내게서는 그저 '감사'외에 달리 나올 것이 없다.

 

그까짓 것...이라고 한다면,

내 살아온 세월이 어떠했는지 알고도 그런다면, 

그건 나를 무시하고 주님을 모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까짓 것...을 할 수 없어서 마음 아파했었고,

그까짓 것...을 할 수 없어서 내 존재의 의미조차 부인하고 싶었다.

사람인지라, 남들이 당연한듯이 누리고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고 할 수 없었던 게 얼마나 참기 어려웠는지...

 

그런데, 이제 나는 그까짓 것...을 누리며,

내가 감히 이렇게 누려도 되는가 싶어 멈칫하게 되고,

그 고마움에 수도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입 밖에 내어 표현하지 않아도,

그분은 이 마음을 다 아시리라...여기며,

어린 눈물 흘러내리지 않게 눈만 깜빡거린다.

적당하게, 알맞게... 모든 것에서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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