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사는 이야기

구두를 닦으며

by IMmiji 2013. 10. 5.

투석액의 포도당으로 인해 체중이 나날이 늘어가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점점 줄더니, 마침내 어느 것 하나도

편하게 입을 수 없게 되었다.

살도 쪘지만, 무엇보다 2리터의 수액으로 가득 차 있는

임산부처럼 부른 배를 감당하기에는 어쨌든 역부족이었다.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지난 6년 반 동안 투석을 하면서,

난 대부분의 옷을 임부복 가게에서 구입을 했었다.

처음에는, 나이든 아줌마가 늦게 임신을 하고 옷을 사러 온 줄

알았던 가게 주인이, 일 년이 가고 이 년이 가도 늘 배부른

상태로 오니까, 이상해 보이고, 궁금히 여기는 게 당연했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알게 된 가게 주인은,

꼭 임산부들만 자기 가게에 와서 옷을 사는 건 아니라고,

살이 찌거나 편하게 옷을 입는 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나름 나를 위로하는 말을 해주어서, 그 고마운 마음씀씀이에,

나는 내내 그 가게에만 가서 옷을 샀다.

 

수술 후에, 다시 그 가게에 갔을 때, 감염을 염려해 마스크

쓰고 갔음에도 나를 알아본 가게 주인은, 깜짝 놀라면서 몸이

왜이렇게 되었냐고, 어디 많이 아팠냐고 염려를 했었다.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고 했더니,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던

그 아주머니를 잊지 못해, 지금도 난 가끔씩 들러 인사를 한다.

 

입지 못하게 되었던 옷들을 박스에 두 번이나 가득 담아서

포항 사는 여동생에게 다 보냈었다.

내가 입는 옷들이 대부분 시장 물건이라, 메이커도 아니고

그리 좋은 것들도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긴 그랬었다.

그래도 동생이라, 입을만한 게 있으면 입고 없으면 주변에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주든지, 수거함에 넣으라며 보냈었다.

 

동생 시어머니는, "이렇게 다 주고 이모는 벗고 사는 거 아냐?"

그러시면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셨다...는 소릴 나중에 들었다.

교회와 병원, 어쩌다 친구 한 번 만나는 게 외출의 전부였던

내게, 무슨 옷이 그리 많이 필요 했겠는가.

필요했다 한들 어떤 옷이 어울리고 좋았을까 싶다.

그때 옷은 그저 내 부른 배를 감추는 것이 역할의 전부였으니...

 

문제는, 살이찌면서 몸만 붓는 게 아니라 발도 따라서 붓고

커진다는 것이었다. 신까지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터라 그 상황이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했었다.

신던 신을 더 이상 신지 못한다는 건... 못 입게 된 옷보다도

더 큰 심란함을 가져왔고, 기분이... 몹시 가라앉았었다.

 

그렇다고 작아진 신을 옷처럼 누구한테 줄 수도 없었다.

작게는 225mm에서 커봤자 230mm을 신는 내 발과 달리,

여동생은 그보다 2cm 이상을 신었고, 요즘 대부분의 아줌마들도

아무튼, 나보다는 크게 신어서 줄까? 물어볼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한 번 사면 보통 10년씩은 신는터라 보기에는 멀쩡해도,

낡아서 준다는 소리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버릴 수가 없었다.

또 다시 그 신들을 신게 된다는 아무 희망도 없고,

가능성조차 없는 세월을 살면서 왜 버리지 못했나 싶다.

나는 비교적 필요없게 되고 쓸모없어진 것들을 의외로 과감히

잘 정리해버린다. 그럼에도 신던 신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제목을 '구두를 닦으며'라고 했지만, 사실 내 신 중에 구두는 거의 없다.

대부분 굽이 낮은 단화들이고 운동화들이다.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교회 가면서 단화나 운동화를 신고 갈 수는 없어서,

낮은 굽의 구두를 겨울용 여름용 하나씩 갖고 있기는 하다.

나도 어젊은 시절이 있었던터라, 통굽으로 된 6-7cm의 구두도 신어봤지만,

그리고 아직도 그걸 갖고 있는데, 하도 신지를 않으니까 여전히 새것이다.

단화나 운동화 신고도 걸핏하면 휘청거리는터라 신기를 피했으니까...

소위 말하는 뾰족 구두인 하이힐은 신은 적이 없었다.

 

여튼, 그렇게 버리지 않고, 놔둔 단화들을 오늘 꺼내 닦기 시작했다.

먹고 남은 바나나 껍질로 구석구석 다 닦고나서, 마땅히 손질할 게 없어

머리에 바르는 헤어 에센스<기름처럼 윤이 흐르고 단백질 성분이라...>로

닦아서 마무리를 했다. ㅎㅎ

십 년 지난 것이 두 켤레이고, 사오년 쯤 된 게 하나<몇 번 신지도 않아

여전히 새것임>고, 아는 분이 주신 게 또 하나... 모두 네 켤레였다.

 

이식을 받고도, 체중이 거의 예전처럼 돌아오고도, 그 신들을 꺼내 신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맞지 않을 거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한 번 늘어난 발은 절대 줄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지 참...

너무 오랫동안 운동화만 신인 줄 알고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어제 신고 다녀온 신을 신발장에 집어 넣다가 보고서 그 신들을

다 꺼냈다.  발을 집어넣으니, 전처럼 쑥 들어가는 게 아닌가!

 

이런 바보가 다 있나... 싶었다.

살이 빠져서 몸에 맞춰 옷은 사입을 줄 알면서, 발은 전처럼 줄어들

거라는 생각은 왜 못하고 사는 걸까.

발을 넣어 보는 신마다 다 들어가는 걸 보면서, 마른 걸레를 들고와

그제사 하나 하나 닦기 시작했고, 그 신들을 닦으며 참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날을 주실 줄 알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버린 걸까.

그저 단순히 아까워서 못 버린 게 아니라...?

 

운동화를 집어넣고, 가죽이 낡고 빛도 바랬지만, 이제 말끔해진 단화를

바깥에 내놓았다. 내일 교회 갈 때 신고 가려고~~ ^^

원래 내게 있었던 거였는데, 없었던 것들처럼 잊고 살아서인지,

마치 새로 신을 산 것처럼,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신던 신들이라, 비록 발에 감각이 없어서 느끼진 못하지만,

분명 편할 것이라 믿는다.

이 가을,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 내년 봄까지...

아니 그 후로도 더 오랫동안 그동안 못 신어준 걸 보상이라도 해주듯,

열심히 그 아이들을 신어 줘야지. ㅎㅎ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금방 허물어지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의 온기가

없기 때문인 것처럼, 내 발의 온기를 잃어 껍죽해진 내 신들도 이제는

생기를 얻어 다시금 살아나 제 구실을 온전히 할 것이다.

내 두 발을 저희 안에 담고, 온 몸의 체중을 받아서 힘들겠지만,

그러면서도 신나게 다니고 즐거워할 것만 같다.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으로 나는 오늘 떨어져 살던

내 신들과 진짜 재회를 했다.

그래, 같이 가보자, 먼 길을... 함께... 즐겁게... 감사하면서... ^^     

  

'내가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을 받고서...  (0) 2013.10.25
새로운 학생들~~^0^  (0) 2013.10.11
뒤늦게 발견한 나의 적성(^^)  (0) 2013.09.20
울산 여행 - 둘  (0) 2013.09.14
울산 여행 - 하나   (0) 2013.09.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