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표현을 하자면,
지난 번 울산에 다녀온 것이 '가을 마중'이었다면,
어제 잠시 시외곽으로 나갔던 것은,
나름의 '가을맞이' 였다고나 할는지...
마중을 나가서 드디어 맞이한 것이라고 해두자.^^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을 그냥 보내서야 되겠냐고,
가까운 곳이라도 잠시 나가보자...고 했었다, 향기님이랑...
지난 번에 향기님이 다녀와서 좋았다고,
다음 번에 나랑 꼭 같이 가보자고 했던 곳으로 가려했던,
우리의 계획이, 예기치 않은 분<아래 사진에 나오는>의
등장으로 방향은 엇비슷 했으나, 내용은 확 달라지게 되었다.
아무튼, 보다시피 우리는 호젓한 길을 걷게 되었다.
평일이라 사람도 차도 거의 볼 수 없었던,
세 여자들만의 길이 된 셈이었다.
블친의 방에서 이렇게 가까이 찍은 벼이삭을 보고,
사진으로나마 그렇게 가까이서 벼를 본 게 얼마만인가 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 그 벼이삭을 직접 내 눈으로 본 것이다.
보기만 했었나 어디... 만지기도 했는데... ^^
산은 아직 푸른빛을 강하게 품고 있는데,
벼는 벌써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already... not yet의 상황이라고나 할지. ㅎㅎ
<이렇듯, 만물이 말씀이고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다!!>
가을이 오긴 왔는데, 완전히 다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부분적으로, 점차적으로 오고 있고, 온 거였다.
향기님과 언니는 부지런히 '가을'을 담았다.
이름모를<나는 모르고 언니는 거의 다 아는> 들꽃들도 담고,
주홍빛으로 익어가는 감도 담고,
역시 내게는 낯선 알 수 없는 '열매들'도 담고...
그 중 잘 나온 것들을 내게 폰으로 보내주었는데,
성의는 감사했지만, 굳이 그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노란 옷을 곱게 입은 벼들만으로도 난 충분했다.
아직은 연둣빛이 배인 노랑이지만 머잖아 황금빛이 될테지...
그렇게 가까이에서 벼를 보고 그 빛깔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말을 잃고 서서, 그런 시간을 허락해 주신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지고 느껴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혹시라도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보기에는 이래도, 우린 논 한 가운데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스팔트 길과 논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한 걸음만 옮기면 바로 논 안이었다.
벼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살포시 벼들 사이로 길을 열어,
한 걸음 안으로 내디뎠음을 맹세한다.
언니는 그 활발한 성격대로 허수아비 포즈도 취해보고,
향기님도 어쩔 수 없이 그 요구에 응했지만,
나의 한계는 논 안에 발을 들여놓는 데 까지였다.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내 평생 벼 속에서 사진을 찍히는 일은 없었을텐데,
요즘 너무 자주 새로운 경험들을 하는 것 같아서,
나도 이런 자신과 상황에 적응이 쉽지 않다는... ^^
이 대담하고 열정적인 언니를,
누가 나보다 한참<이라고 하면 화를 낼려나? ㅋㅋ> 위라고 할까?
어제, 언니는 나로인해 엄청 답답했을 것이다.
향기님보다 더 기운을 쓰지 못하고, 못 따라줘서...
언니가 원하는대로 위로 더 올라가 주지도 못하고,
냇물에 발 담그러 내려가고 싶어했는데 내려가지도 못해서...
본의아니게 짐이 된 것 같아 미안했다. ㅜㅜ
이렇게 평탄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난 힘들었다.
비가 온대서 우산까지 챙겨갖고 갔는데,
의외로 더웠고, 은근 오르막이라 내겐 힘든 길이었다.
그렇게 걷게될 줄도 모르고 늘 신던 운동화가 아닌 단화를 신었었고,
보다시피, 옷차림도 참... 답답하게 입었다.
호젓한 길도 좋고, 가을 내음이 가득한 공기도 좋았는데,
그 동네에는, 지나가는 길손이 쉴만한 데가 전혀 없었다.
언니는 가져온 신문을 깔고 땅바닥에 편하게 앉자고 했지만,
바닥에 앉는 게 불편한 나로서는, 결국 이렇게 앉았다는...
그저 어디든 난 빨리 앉고 싶었을 뿐이다.
계속 걷다보니, 이식받은 쪽이 뻐근했고, 허리도 아팠다.
폰카 앞이라 웃는 듯해도,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는...^^
어디까지 가자고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나로인해 절반도 못가고 돌아서 내려온 건 분명했다.
차가 아니면 가지 않던 길을 내 두 발로 간 것이
나자신은 대견한데, 두 씩씩한 여성분들께는... ㅎㅎ
출발했던 곳으로 다 내려와서,
키 큰 은행나무 앞에서 한 컷 담았다.
빨리 거기 서보라는 언니의 요청에 따라서~~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며 사진에 찍혀본 건 또 얼마만인지...
계획대로, 정한대로 가고, 뭔가를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 예기치 않은 길로, 뜻하지 않은 곳으로,
가보는 것도 그 나름 좋은 것 같다.
때로 기대 이상의 즐거운 만남과 추억도 얻게 되고 말이다.
어디를 가는가보다 누구와 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게,
잠시든 오래든 '동행'이 주는 여행의 즐거움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겠지.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 가면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일테고...^^
늘, 가을이 오는가... 하다보면 어느새 가을이 가는가...였는데,
가을을 맞으러 잠시 나가보니 그 맛이 비할 데가 없다.
멀리 가지 않아도, 특별한 곳에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
잠시 이 가을이 곁에 머무르는 동안,
내 안에 품어도 보고, 그 품에 안겨도 보고,
그리고 다시 만나자 웃으며 손 흔들어 보내도 주는...
그런 가을을 이번엔 살아봐야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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