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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야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by IMmiji 2013. 9. 5.

 

 

 

이런, 테이블이 좀 더 넓게 나오도록 가로로 찍었어야 하는데...^^

책만 커다랗게 나와버렸다.

 

적당한 읽을거리를 찾던 중에,

읽어야 하는데 다 읽지 못한 것둘 가운데 하나로,

그리고 기왕이면 최대한 가벼운 무게를 찾다보니,

아직도 마저 다 읽지 못한 '키다리 아저씨'를 들고 집을 나섰다.

 

이미 가방에는,

시간 맞춰 먹어야 할 약과 물병이 자릴 차지하고 있었고,

지갑과 파우치, 저혈당용 사탕 봉지, 동전 주머니까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진료를 마친 뒤에 담아와야 할

한 보따리 약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 넣을래야 넣을 수도 없었다.

 

7시 반이 조금 지난 시간에 검사를 마치고,

혹시나 하고 지난 번 그 자리에 가보니,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리에는

듬성듬성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도,

심지어 그 옆자리에도 누가 앉아 있었는데,

거기 그 자리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를 않았다.

일단 자릴 잡고 앉아 물과 약을 꺼내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먹고,

앞으로 진료 시간까지 세 시간 이상을 어떻게 보낼까... 하며,

나름 잘 보내겠다고 준비를 하다가 말고는,

문득 든 생각이 있어, 신장과로 전화부터 해봤다.

 

아직 진료 시간까지 한참 남았는데,

설마 벌써부터 나와있을까... 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낯익은 간호사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귀를 울렸다.

"아, 안녕하세요? ㅇㅇㅇ인데요.

선생님께서 언제부터 진료 시작하세요?" 했더니,

"지금 자리에 계신데요?"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제가 늘 선생님한테 맞춰 선생님이랑 똑같은 걸로 갖다드렸는데

간호사님은 따로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하니까,

웃으면서, 자기 것까지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데...하더니,

커피는 방금 마셨다면서, 요거트...로 하길래, 알았다며 주문을 접수했다.

 

진료 시간이 다 되어 올라갈 때 커피를 들고가니,

대기하는 환자들이 늘 너무 많아서,

보아하니 갖다드려도 제대로 드실 시간조차 없는 듯했다.

차라리 진료를 시작할 때 갖다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병원 내 커피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바로 주문해서 들고 갔다.

그렇게 일찍 커피 배달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ㅎㅎ

 

그 한 잔의 신선한 커피는,

고마운 선생님과 친절한 간호사에 대한 내 나름의 감사 표시이다.

별 것 아니지만 그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이다.

커피 배달을 간 길에, 일찌감치 예약증도 맡겨놓고 왔다.

그 덕분에, 오늘은 가자마자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예약시간에 맞춰 가도,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예사인데 말이다.

 

난, 일찍 예약증을 낸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친구하고 얘기를 하다보니,

그게 다 간호사를 배려해 준 성의<?>가 통해서...라고 해서 웃었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곧바로 진료를 보긴 또 첨인 것 같다.

이렇게 또 세상 사는 요령을 터득하는 모양이다. ㅎㅎ

 

아무튼, 오늘 난 마치 나만을 위해 비워놓은 듯한 지정석<?>에서,

두 시간 넘게 집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를 했다.

원래는 가져가서 읽어볼 요량으로, 시간 보내는 용으로 들고 갔었는데,

보다보니, 모르는 단어 내지는 알듯말듯한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사전<휴대폰에 있는>을 쉼없이 찾다보니 공부가 되고 말았다.

 

원래 책 옆에 전자사전 같은 휴대폰이 있었어야 하는데,

사진을 찍다보니 부재 상태가 되고 말았다.

집에서는, 원문과 번역본과 사전을 나란히 놓고 보는데,

상황상 그렇게는 못하고...  그래도 나름 재밌었다.

휴대폰 사전을 하도 들여다봐서 나중엔 눈이 침침해져 더 볼 수도 없었지만,

마침 진료 시간도 다 되어서 아쉽게 일어섰다.

 

필<feel?> 받았을 때 확 다 읽어버렸어야 하는데... 아쉽다. ㅎㅎ

평소에는 두어 장 읽고마는데, 오늘은 다섯 배는 더 봤지 싶다.

병원에 정기검진 받으러 간 걸 잠시 잊을 정도로 집중했었다.

이 나이에, 나에게 그런 집중력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따름이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지...를 잊다니!! ㅋㅋㅋ

 

그냥 거기가 도서관이었으면...

공부하러 간 학생이었으면...

그랬으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을까 싶었다.

아니다. 그대로도 좋았고 행복했다.

주위의 소란조차도 멀리서 들리는 아득한 속살거림처럼 느껴졌었으니까...

어디에 있는지, 자신이 누군지...를 잠시 잊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다음 번엔, 조카가 준 'The Giver' 를 갖고 가서 공부해야지~~^^

아마 그 때도 그 지정석은 나를 위해 비워져 있을 것 같다.

진료를 위해, 검사 결과를 위해 마냥 기다리지 않고,

무언가에 집중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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