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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of truth

[스크랩] 볼 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김성수 목사)

by IMmiji 2013. 5. 18.

 

 

볼 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김성수 목사)

 

 

즉, 구름은 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를 부인하고 구세주를 부인한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우습게 여겼던 자들, 눈이 멀어 참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에만 눈을 두고 살아가던 자들, 한마디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계 1:7-8)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로서 요한 계시록의 서론부분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제 그의 편지 서론에서 마지막으로 요한 계시록의 대 주제를 수신자들에게 던집니다. 앞으로 전개될 편지 내용의 요약이기도 하고요. 그 내용인 즉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은 7절을 '볼지어다' '이두'라고 시작을 합니다. '이두'는 단순히 'see'라는 개념의 단어가 아니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유의하고 집중하며 깨달으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어떻게 마치는가 하면 ‘그러하리라 아멘’ 으로 마칩니다. 그러하리라는 말은 헬라어로 ‘나이’입니다. ‘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멘하고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7절을 ‘아멘, 아멘’이라고 헬라어로 히브리어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얼마나 감격스럽고 벅차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계시록 전체의 주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계시록 전체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일과 재림과 재림후의 천국, 모두 그 이야기입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구름을 탄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원어로 보면 손오공처럼 구름을 ‘올라탄다’는 의미의 단어는 한 번도 쓰인 적이 없습니다. 개역 성경에서 ‘구름을 타고’ 라고 표현된 단어는 전부 헬라어 ‘메타’라는 단어입니다. 그 단어는 ‘함께’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좀 더 확실히 번역을 하면 ‘구름과 함께’라고 해야 맞습니다. 우리는 아이들 성경이나 그림책에서, 혹은 성화라는 것들에서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과 뭉게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이 구절을 그렇게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구름이라는 것은 다른 깊은 의미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먼저 구름 하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지요? 어디입니까? 출애굽 사건 때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이끌었던 구름기둥이 생각나시지요? 그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였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16장을 보시면 그 구름이 담지하고 있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출 16:10)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여기서도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지요?

 

(대하 5:13-14) “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그 성전에 구름이 가득 차는데 그 구름은 여호와의 영광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임재 하시는데 영으로 임재 하시는 모습입니다. 신약에도 구름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예수께서 변화 산에서 해같이 찬란한 몸으로 변하셨을 때에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마 17:1-5)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어디에서 또 들렸습니까?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들렸습니다.

 

(마 3:16-17)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두 장면은 아주 흡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다르지요? 변화 산에서는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는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구름과 하나님의 영광과 성령이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즉, 구름은 영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구절을 다니엘서 7장에서 인용을 한 것입니다.

 

(단 7:13-14)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 이니라”

 

여기서도 구름을 타고 예수님이 오시는데 여기서도 ‘구름을 타고’에서 쓰인 단어가 아람어 ‘임’입니다. 아람어 ‘임’도 역시 ‘구름과 함께’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구름과 함께 나타나셨는데 그에게 영광과 권세와 나라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다니엘이 환상을 보는 장면인데 인자 같은 이, 예수님께서 지상의 모든 사역을 다 마치시고 영광과 권세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요한은 이 다니엘서를 인용함으로써 이제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그 영광과 권세를 갖고 오실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7절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데(재림 하시는데) 이제 예수님은 초림 때처럼 마구간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유대 땅 시골의 목수의 아들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맥없이 두들겨 맞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자리에 복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하신 참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과 함께 오시는데, 그 의미는 이러합니다.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께서 어떻게 그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까? 성령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요? 마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난 것처럼 육신을 갖고 계신 성자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광의 하나님의 자리에 복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성령하나님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령과 함께 오십니다. 우리를, 성령과 함께 계신 그 찬란한 예수님의 몸과 같이 만드시기 위해 이제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가시적으로도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몸을 주시기 위해 성령과 함께 오시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께서 주의 날에 성령과 함께 오시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창 3:8)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서늘한 날에 찾아오십니다. 개역 성경에는 ‘서늘한 날에’라고 번역이 되어있지만 히브리어로 보면 ‘욤 루아흐’입니다. 그 말은 ‘성령의 날에’라는 뜻입니다. 그 부분은 제가 요한 계시록 강해를 마치고 창세기 강해를 할 것인데 그 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갔던 것입니다. 그 심판은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이 오신다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복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성령세례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성령 세례는 믿지 않는 가짜들에게는 죽음이요 저주요 심판입니다.

 

(마 3:11-12) “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출 12:29-30) “29 한밤중에 주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치셨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두 치시니, 30 바로와 그의 신하와 백성이 그 날 한밤중에 모두 깨어 일어났다. 이집트에 큰 통곡소리가 났는데, 초상을 당하지 않은 집이 한 집도 없었다.”

 

우리가 받는 세례는 바로 그 성령 세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죽어야 할 자가 죽고 예수 안에 있는 새 피조물만 살아나는 것이 세례 아닙니까? 마치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이 홍해로 들어가면서 죽고 가나안으로 살아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홍해를 건너는 것을 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세례를 받은 애굽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죽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시면 예수 안에 있는 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지옥의 불로 던져지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지옥 불은 성령의 불이라고 했지요? 죄인들은 그 거룩하신 성령의 불에 영원히 타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보시겠습니까?

 

(계 6:12-17)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 16:19-21)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계 20:9-15) “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습 1:14-15)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 하는도다 15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살전 5:1-6)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이렇게 무시무시한 날이 바로 재림의 날입니다. 구름 타고 가야금 울리면서 오는 날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예수 믿는 자들을 우습게 여겼던 모든 자들은 차라리 내 몸 위에 바위를 굴려 덮어달라고 할 만큼 무시무시한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여러분이 어떻게 건져지셨습니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용서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건져지신 분들이 뭐가 그렇게 힘든 일이 많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함께 오시는 그날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날인지 요한은 알기에 계속해서 스라랴 12장의 구절을 인용해서 7절의 말씀을 이어갑니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영광의 모습으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각인’ 모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볼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모든 족속이 괴로워서 통곡할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서 12장으로 가서 그 말씀의 의미를 확인하겠습니다.

 

(슥 12:10-14)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이렇게 모든 족속이 통곡을 하는데 그 모든 족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들입니다. 10절에 보시면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통곡을 한다’고 나옵니다. 그리고는 그 찌른 족속들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찌른 자들은 단순히 빌라도와 헤롯과 로마병정과 바리새인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들은 ‘예수를 부인하고 구세주를 부인한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우습게 여겼던 자들, 눈이 멀어 참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에만 눈을 두고 살아가던 자들, 한마디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입니다.

 

(요이 1:7) “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벧후 3:2-4) “3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살면서, 여러분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4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뒤로, 만물은 처음 창조 때로부터 그냥 그대로다" 할 것입니다.”

 

우리를 조롱하는 많은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통곡할 날이 올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아멘, 아멘’으로 그날의 도래를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스가랴서를 인용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마 24:29-30)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 때는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통곡은 회개의 통곡이 아닙니다. 후회와 분노의 통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숫자가 다 채워져야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구원받을 사람은 다 구원받고 그 후에 심판이 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거기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이 통곡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예수를 부인하고 믿지 않던 자들의 이를 가는 통곡이며 처절한 후회의 절규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여러분, 여러분은 안심하세요. 여러분은 변화 산에서의 우리 주님과 같은 새 몸을 입고 그 때부터 이제 영원히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아픔도 없는 곳에서 기쁨과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반드시 속히 옵니다. 아니 벌써 오고 있습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엘코마이’는 시제가 현재형입니다. 지금 오고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의 발자국 소리와 불 말 불 병거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셔야 합니다.

 

군에 있을 때 멀리 25사단에서 탈영을 한 탈영병들이 용인까지 넘어왔습니다. 그런데 수류탄과 실탄을 엄청 많이 갖고 도망을 쳤습니다. 저희 사단에서 그 일을 맡았는데 처음 몇 명이 수색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산 속에 있는 외 딴 집에서 갑자기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저희는 공포탄 몇 발가지고 나갔는데 그 쪽은 수류탄까지 있었습니다. 게다가 무전병이 철모를 들고 무전을 하다가 이마에 총을 맞고 즉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는데 멀리서 군가소리하고 구보소리가 들렸습니다. 몇 개 대대가 총소리를 듣고 우리를 구하기 위해 군가를 크게 부르면서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소리였습니다. 그 안도감, 감사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를 위해 하늘의 천군 천사와 그 장수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불 말과 불 병거를 이끄시고 우리에게 달려오고 계십니다. ‘이놈들 게 섯거라, 누가 동생들을 건드려!’ 호령하시면서 달려오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소리를 들으십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큰형이십니다. 하나님의 맏아들이십니다. 그 분은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모든 만물이 그로부터 창조되고 시작되었고 모든 만물은 그 분에 의해 심판을 받고 불태워질 것입니다. 그 역사의 시작이시며 역사의 종결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이 들어가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있게 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나의 생명의 시작부터 나의 인생 전체를 주관하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편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그렇게 두렵고 무서우세요? 게다가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판타크라토르’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 모든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 분이 지금 우리만을 바라보시면서 우리를 위해 오고 계시다고요, 로마의 막강 도미티안 황제에게 핍박을 받고 있던 당시 신자들에게 이 요한의 메시지는 엄청난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서로에게 이러한 위로의 말을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도미티안, 그 잔인한 자도 이제 불타는 지옥 속으로 던져질 거야, 그 분이 지금 오고 계시다. 자, 우리 힘내자’

 

여러분, 신자로서 사는 게 힘드십니까? 이제 우리는 곧 제대를 하게 될 겁니다. 그날은 반드시 속히 올 거니까요. 그 때가 되면 모두가 일어나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각인의 눈이 그 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치 연극이 끝나면 무대에서 칼에 맞아 쓰러져 있던 배우나 총에 맞아 죽어있던 배우나 그들을 처참하게 밟던 폭군의 역할을 하던 사람이나 모두 일어나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하듯이 그렇게 모두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책이 열릴 것이고 그 생명책에 기록된 여러분은 이제 더러운 분장을 지우고 천국의 오스카 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멋진 옷을 갈아입고 우리 주님 곁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겠지요. ‘내가 너에게 맡긴 역할 참 잘해 냈다. 고맙다’ 우리 모두 그 날을 바라봅시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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