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이 글은 어떤 분이 은사에 대하여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 글입니다.
간략하지만 서로 이해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올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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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대하여 짧게나마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란? 복음을 말합니다.
하늘나라 언어가 이 땅에선 생소한 언어로 들리게 되지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베드로가 천한만국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때 각 사람의 언어로 들린 것이 바로 방언입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의 언어로 듣게 하신 것이지요.
지금도 예수 이야기를 말하면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듣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 말씀들을 깨닫게 해 주시는 통역을 하시지요.
이 시대 은사주의자들이 흔히들 행하는 혀 꼬부라진 이상한 언어는 방언이 아닙니다.
방언이나 예언을 훈련한다는 것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증거입니다.
은사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글자 그대로 주께서 필요에 따라서 주시는 겁니다.
은사는 내 필요가 아니라 주님의 필요에 따라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마치 곶감 빼 먹듯이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 때 행할 수 있는 고정화 되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예언이나 방언을 은사적인 계시라고 합니다.
은사란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은사 받으면 영원히 그 은사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계시(啓示)란? 주께서 열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계시가 성경으로 완성되었으니 지금의 은사는 성경을 깨닫게 해 주는 은사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 흔히 행하여지는 방언은 한마디로 종교적 자아도취라고 보면 됩니다.
이런 방언은 중들도 하고 모든 종교에서 다 행하여집니다.
일종의 주술적(呪術的) 행위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의 뜻을 깨닫는 다섯 마디가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4장에 말하는 방언이란? 당시엔 정경(正經)이 완성 되지 않은 상태이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쏟아졌습니다.
너도 나도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교회를 어지럽히니 참 계시가 무엇인지 분별해 주어야 했지요.
그래서 누군가가 풀이해 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너도 나도 주께 받은 복음이라고 말하니 교회 안에서 누군가가 그것이 참 복음인지 아닌지 구별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통역을 하라고 한 겁니다.
과연 그가 계시로 받았다고 하는 그 말이 과연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러한가!
베뢰아 교인들이 성경을 상고하였다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지금은 계시가 성경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하는 말은 계시입니다.
그러니 사도들이 한 방언을 지금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완성된 계시로 해석을 하여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계시인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방언은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예수그리스도 이야기로 풀어주는 것이 방언이고 통역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방언을 통역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깨달으면 방언을 통역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판단 할 때 항상 유념하여야 할 것은 그 은사가 어디로 지향하느냐를 보면 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 십자가로 나아가게 합니다.
방언이든 예언이든, 병 고침이든, 귀신을 쫓는 것이든,,,,,,,
왜냐하면! 성령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는 일을 합니다.
애석하게도 이 시대 은사 운동을 하는 대 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은사 행하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만 특별한 은혜를 입은 자처럼 행세하여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합니다.
십자가는 자기 부인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들은 자기 부인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이들이 말하는 십자가는 거짓 십자가입니다.
그 신기한 것으로 사람들을 자기에게 붙잡아 두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중매하지 않고 사람들을 자기 종으로 두고자 합니다.
자신에게 기도 받으면 뭔가 영험 한 것 같다는 식으로 여운을 남겨서 자기에게 붙잡아 두고자 하지요.
이게 전형적인 거짓 종들입니다.
예언이란? 인간의 앞날을 알려주는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언이란? 언약의 말씀을 말합니다.
속된 말로 헌금 봉투 가지고 성경 구절 하나씩 빼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마귀적인 겁니다.
성경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지고 인간의 길흉을 점치는 것은 비 성경적인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 즉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면,,
십자가가 믿어지면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칩니다.
이는 은사는 부분적인 것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모든 은사의 종합셋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 믿어지는 사람은 모든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사는 사진과 같고 예수님은 실제와 같습니다.
실제를 만난 사람은 사진을 붙잡고 자랑하지 않겠지요.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진다면 더 혼란스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을 입었습니까?
그러면 당당하게 사십시요.
신유은사에 대하여서는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죄사함을 주셨습니다.
이는 병고침을 통하여서 죄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죄가 병을 몰고 온 것이란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지요.
모든 병들은 죄의 특성들을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소경은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란 뜻이고,
중풍병은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살수 없는 무기력한 자라는 것이고,
문둥병은 인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썩어서 부패한 인간이란 뜻이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인간은 죄와 사망에 가두어져 있는데 예수님이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이 시대 행하여지는 신유 은사는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우리아빠 팔뚝 굵다 라는 것을 남에게 자랑이라도 하듯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호기심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마귀의 장난입니다.
모든 은사는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온전한 것이 오면 다 폐하여 질 것들이지요.
온전한 것이란? 예수님입니다.
다른 말로 내 안에서 예수가 믿어진다고 하면 은사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병 고침을 주술적으로 행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라기보다 마귀의 미혹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도들이 행한 은사는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들입니다.
사도가 하는 일이 또는 말씀이 주께로 온 것이 맞다는 증거 차원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심으로 이 분이 뉘기에 바람도 순종하는고!
아! 이분이 바로 바람을 창조한 하나님이구나! 를 알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은사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차원에서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것도 이와 같습니다.
만약에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그 원주민들에게 선교사가 증거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는 차원에서 은사가 행하여 질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되어 있는 현장에선 은사가 도리어 복음을 가리는 현상이 되고 맙니다.
말씀이 분명히 있음에도 은사를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후서 2장에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유혹을 역사하여서 사단의 미혹에 빠지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살후 2:9-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마디로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을 걸러 내려고 사단의 표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금 행하여지는 각양의 은사들은 대 부분 이 부류에 속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이 안 믿어지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주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을 증거하는 차원에서 은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마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말에 거짓 선지자들이 갖가지 표적으로 사람을 미혹한다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믿어지는 성도는 은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안 믿어지니 자꾸만 보여 달라고 하는 겁니다.
은사가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 아니고 필요치 않다는 말입니다.
은사를 추구하는 것은 예수가 안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안 믿어지니까 자꾸만 자기의 경험을 붙잡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여 준다고 해서 예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을 받은 자는 안 보여 주어도 믿고,
믿음을 받지 않은 자는 아무리 보여 주어도 못 믿습니다.
부자가 지옥에서 하나님에게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서 자기 동생들에게 지옥이 있다고 알려 주라고 했을 때 믿을 놈은 나사로가 안 가도 복음 듣고 믿을 것이지만 안 믿을 놈은 나사로가 살아서 간다고 해도 안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인간 쪽에서 믿을 방법이 없습니다.
기적을 맛본다고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는 오로지 하나님이 믿게 해 주실 때만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믿어지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지요.
님은 믿음을 받았기 때문에 은사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니 은사를 추구하는 자들보다 더 나은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지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욱 복 되다고!
그러니 님께서는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은사가 없어도 예수가 믿어진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 받으면 됩니다.
병원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산물입니다.
이걸 아시고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도 믿음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감사함으로 병원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고 나서 죽거나 병들어 빨리 죽게 하는 것이라도 성도에겐 죽음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질고를 통하여서 주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사모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축복이라고 합니다.
부디 죽음이 축복임을 깨달아지는 은혜가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사 57:1-2=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2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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