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대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큰 다리와 도로, 건물이 무너져 사상자가 많았다.
당시 시애틀의 한 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던 나는
지진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난생 처음 겪었다.
시애틀은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지진대에 속한 데다 몇 년 전에
인근 세인트헬렌스 화산이 폭발해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더구나 20년 이내에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와
주민들은 그곳을 떠나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집값은 폭락했다.
동료들도 극도로 불안해했다.
그런데 나는 공포심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들과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있었지만 느끼는 것은 전혀 달랐다.
1년만 머무는 단기 체류자였고,
집도 내 것이 아니어서 장래의 지진이나 집값 폭락을 염려할
이유가 없었다.
주민들의 불안한 표정을 보면서 오히려 나그네의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그곳에 살지만 그곳 환경에 영향 받지 않는 것,
몸은 그곳에 있지만 마음은 그곳에 속하지 않는 느낌은 강력하고
신비했다.
외적인 조건과 환경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얼마나 강한 힘인지
처음 알았다.
무엇을 갖고자 애쓸 것이 아니라,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비우는 것이 더 좋은 삶의 방법임을
깨달았다. 시애틀에서 1년만 살기 때문에 나그네라고 한다면
수십 년밖에 못사는 이생의 삶 역시 나그네가 아닐까?
시애틀에서의 체험은 '나그네 정신'을 처음으로 알게 했다.
종교에서는 이 같은 나그네 체험을 삶의 본질적 형태로 보아
중요시한다. 구약 성격 창세기에는 야곱이 이집트의 파라오를
만난 자리에서 "나그네 길에,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온갖 일을 겪은 130세 노인이 자신을 나그네라고 칭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은 더 큰 모험을 했다.
고향에서 족장으로 편히 지낼 때 하나님으로부터 "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는
명령을 받는다.
서울에서 큰 회사를 경영하며 잘사는 사람에게 가족을 이끌고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라는 말과 같다.
.................
나는 그날 이후 나그네 정신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어림없었다.
조금만 중요한 일이 생겨도 마치 영원히 사는 존재인 양 그 일에
매달려 노심초사한다.
환경과 조건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고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길 때마다 '100년 후'라는
말을 떠올린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중에 100년 후에도 살아 있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도 100년 후까지 계속되는 일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그네 정신이 되살아나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다.
한 관광객이 널리 존경받는 랍비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초라한 방 한 칸에 책상과 의자만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랍비님, 가구는 어디 있습니까?"
"당신 가구는 어디 있소?"
"제 거요? 저야 이곳에선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인 걸요."
랍비가 대답했다. "나도 그렇소."
<글쓴이 윤재윤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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